국가별로 럭셔리 시계 구매기준을 바꾼 문화 차이[김동욱의 하이컬처]

입력 2021-04-30 05:00
수정 2021-04-30 06:07


민족성·국민성이라는 것은 문화 상품의 소비나 향유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비록 수천만~수억 원 대의 럭셔리 시계라는 특정 제품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집단으로서 국민적 취향이 문화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독일 경제 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최근 영국과 독일, 프랑스의 명품 시계 투자자들의 국가별 투자 행태 차이를 드러내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독일의 명품 시계 전문 온라인 중고거래업체인 워치마스터가 유럽 주요 3개국 1600여 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시계 구매시 고려하는 점과 거래의 특징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사실 명품 시계 구매자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공통적인 면을 적잖게 보였습니다. 우선 시계를 살 때 투자가치보다는 시계의 상태, 시계 자체의 매력을 우선시한 점이 눈에 띕니다.예를 들어 예를 들어 독일에선 시계 수집가들이 명품 시계를 사들일 때 고려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재미'와 '매력'으로 꼽혔습니다. 90%의 응답자가 이 부분을 꼽았습니다. 투자 잠재력을 고려했다는 응답은 '의외로' 38%에 불과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에선 투자 잠재력을 중시했다는 비율이 20%대에 머물렀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투자가치에 중점을 둔 명품 구매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럽에선 투자가치는 중고 명품 거래 선택 시 후순위에 머문 모습입니다. 다만 유럽 3개국 중고 명품 시계 시장 모두 가장 인기가 높은 브랜드가 '롤렉스'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거래가 많이 돼 환금성이 좋은 '롤렉스'가 중고 럭셔리 시계 시장에서 일종의 표준 모델,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코로나 시대를 맞아 유럽에서도 럭셔리 시계의 투자가치를 중시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롤렉스'나 '오메가'를 쥬얼리가 아닌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조사에선 특히 국가별로 명품 구매와 관련해 적잖은 차별성을 보인 점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프랑스(38.4%)와 영국(54%)에선 시계를 구매할 때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혔습니다. 반면 독일 고객들은 가성비(42.8%)를 가장 많이 지목했습니다. '멋쟁이' 프랑스인, 경제를 중시하는 효율적인 독일인이라는 통념이 어느 정도 럭셔리 시계 구매에도 반영된 모습입니다. 시계를 5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비율에서도 프랑스가 43.1%로 독일(24.9%)이나 영국(19.3%)보다 압도적으로 높아, 패션에 관심이 많은 국민성이 드러났습니다.

신모델을 선호하냐 빈티지 제품을 선호하느냐도 나라별로 확연하게 갈렸습니다. 독일(87.1%)과 프랑스(76.8%)에선 신모델이 더 관심을 받았지만, 영국 럭셔리 시계 구매자의 85%는 최소 20년 이상 된 빈티지 모델을 선호했습니다. 영국에선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원래 가격보다 더 많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구형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셈입니다.

보유한 럭셔리 시계 중 가장 중요한 모델로 많이 꼽힌 제품은 영국에선 '롤렉스 서브마리너(6.0%)', 프랑스에선 '롤렉스 데이토나(4.7%)'였습니다. 독일에선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가장 많이 지목됐지만, 비율이 1.4%에 불과해 압도적인 후보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럭셔리 시계와 같은 명품 시장도 사회·문화적 특징에 따라 국가별로 특색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한델스블라트 기사는 '독일 시계 수집가와 영국 수집가를 구분 짓는 것(Was deutsche Uhrensammler von britischen unterscheidet)'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무대를 옮겨 한·중·일 3국에서 비슷한 조사를 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