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삶을 제약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인간을 얽어맨다. 사람들은 공간 속에서 웃고, 울고, 땀 흘리고, 쉰다. 광고 문구처럼 ‘어디에 사는가가 당신이 누군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가 주거 문제인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시점에 공간과 얽힌 사람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긴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외국의 공간, 과거의 공간, 미래의 공간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의 공간을 논하지만 행간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리멤버 홍콩》(전명윤 지음, 사계절)은 여행 가이드북 제작자의 홍콩 민주화 운동 관찰기이자 뜨거운 참여기, 절절한 응원기다. 중국 대륙을 민족주의 열풍이 휩쓰는 동안 ‘세계 시민’으로 남기를 꿈꾸는 홍콩 사람들의 정서를 오롯이 담았다. 홍콩이란 공간은 그 출발부터 실향민들의 도시였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갇혀버린 이들, 공산당을 피해 고향을 떠난 이들의 땅이었다. 이들에게 홍콩의 중국 반환 8년을 앞두고 벌어진 ‘천안문 사태’는 악몽의 예고편이었다.
중국은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우고 ‘민주주의는 곧 혼란’이라는 선전을 반복하며 홍콩을 옥죄는 강도를 높여갔다. ‘우산혁명’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전후 맥락을 전하면서 운명적으로 홍콩이란 공간에 묶여 있는 홍콩인들, “아직 중국이 아니다”고 외치지만 중국을 벗어날 수 없는 홍콩인들의 정체성 혼란을 생생하게 담았다.
《공간의 미래》(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는 40여 개 건축상을 받은 건축가가 바라본 공간에 대한 사유를 정리했다. 사람 간의 관계, 생활방식은 공간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과거 아파트 발코니에 널린 빨래를 통해 엿볼 수 있던 삶의 모습들은 발코니 확장과 함께 유리창 뒤로 숨어버렸다.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1인 가구가 크게 증가했지만, 대다수 아파트는 4인 가족을 겨냥한 방 세 개 평면도를 표준으로 삼고 있고 주방을 구석에 배치했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방을 쓰지 않지만 한번 지어진 ‘낡은’ 주거 구조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삶을 제약하고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집, 회사, 학교, 상업 시설, 공원 등 생활과 밀접한 공간의 가까운 미래를 점쳐본다. 인간은 공간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간은 변한다.
《경성의 아파트》(박철수·권이철 등 지음, 집)는 한국과 일본의 주거문화사 전문가들이 오늘날 ‘한국 대표 주거공간’이라는 아파트의 시원을 짚어본 책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1930년대 경성(서울)에는 ‘아파트’가 최소 39곳이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1925년 25만 명이던 서울 인구는 1930년대 40만 명, 1940년대 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주거난이 사회문제화했고, 새로운 주거형태로 주로 저층 목조건물 형태의 아파트가 등장했다. 대다수는 ‘주거임대’ 형태의 서민 주택이었지만 일부 상류층·부유층의 생활공간도 모두 ‘아파트’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통용됐다.
수많은 콘텐츠가 빽빽하게 수록된 탓에 피곤한 점이 없지 않지만, 당시 간행된 ‘경성·인천 전화번호부’ 등에서 아파트의 오랜 편린을 발견하고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