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재정 운용계획을 발표한 세계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확장적 재정기조를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재정지출 및 국가채무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향후 코로나19와 같은 경제위기가 다시 닥쳤을 때 재정이 제역할을 하기 위해선 선제적으로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9일 발표한 '코로나19 위기 시 재정의 경기대응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해외 국가들과 한국의 중기 재정운용 계획을 비교·분석했다. 비교 대상 주요국은 호주와 독일, 일본 등 3개국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허진욱 KDI 경제전망실 모형총괄(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반영해 중기 재정계획을 발표한 나라는 지금까지 한국과 호주, 독일, 일본밖에 없어 비교 대상을 3개국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까지 지속적으로 확장적 재정기조를 유지할 예정인 반면, 주요국에서는 재정지출을 줄여갈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호주와 독일, 일본은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급증한 재정적자 규모를 점차 정상화하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3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통합재정수지 기준) 규모는 올해나 내년을 기점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 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까지도 작년과 유사한 규모의 재정적자를 유지할 전망이다. 한국의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2019년 0.6%에서 지난해 3.7%로 이미 큰 폭으로 늘어난 상태다.
허진욱 연구위원은 "경기 회복기에 재정기조의 정상화가 지체된다면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국가채무 누증이 심화되면서 향후 긴급한 재정 수요가 발생했을 때 대응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극복 이후에 재정지출을 미리 줄여놔야 또 다른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재정정책을 통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따라 장기적으로 한국 정부의 재정지출 및 국가채무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선 재정 수입 확충 노력도 필요하다는 게 허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그는 "재정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선 그나마 여력이 있는 지금부터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허 연구위원은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작년과 올해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대응한 것은 위기 극복과 성장률 제고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네 차례의 추경을 통해 66조8000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했고, 올해도 이미 14조9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마련했다. KDI 분석 결과, 이 같은 대규모 추경 편성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추가 성장할 수 있었고, 올해엔 0.3%포인트의 성장률 제고 효과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지출 1원이 유발하는 GDP 증가 효과는 0.2~0.3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허진욱 연구위원은 "추경 예산이 성장보다는 피해 계층 지원을 위해 마련된 만큼 승수효과가 비교적 작은 이전지출에 집중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허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의 크기를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재정 대응의 규모가 합리적인 수준이었다고 평가된다"면서도 "지속가능한 재정 운용을 위해 경기 수축기에 확장적으로 운용됐던 재정을 회복기엔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