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낼 상속세와 ‘사회환원 재산’은 무엇보다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2조원이 넘는 상속세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코로나 극복 와중에 1조원 규모의 ‘의료기부’도 감염병 소아암 등에 대한 연구·대응에 뜻깊은 재원으로 활용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결정은 1만1000여 건, 2만3000여 점에 달하는 국내외 문화재와 예술품의 국가 기증이다. 국보와 보물을 망라하는 국가지정 문화재는 물론, 인류 예술사의 걸작까지 다수 포함된 ‘이건희 유산 컬렉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한국의 명품 문화유산들과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나 봤던 모네, 피카소, 샤갈, 고갱 같은 대가의 걸작을 국민이 맘껏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도체 신화’를 주도한 혜안의 기업가가 남긴 족적이 유산 기부와 기록적인 상속세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납세로 보자면, 삼성전자 한 곳이 지난해 국내 법인세수의 18%(10조원)를 낸 게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삼성 계열사와 1·2·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세금 내는 일자리’ 수는 계산도 힘들다. 나라 밖에선 삼성 브랜드가 국가 브랜드를 선도할 때도 적지 않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막후비사를 보면 고인은 기업 본연의 활동 외에도 다양한 행보로 삼성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실천했다. 그러면서 생을 마감한 뒤에도 막대한 기부로 ‘기업가의 길’을 보여줬다.
삼성가(家)의 3조원 규모 문화재 사회환원과 기부, 상속세금을 보면서 기업의 존재와 기업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성공한 기업가는 상속세 차원을 넘어 국내외 문화예술사까지 다시 쓰게 할 정도의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족이 5년간 분납할 12조5000억원의 세금은 지난해 국내 전체 상속세 세수의 3배가 넘는다. 그렇게 유산의 60%를 국가에 남기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상속세율이 기업 활동의 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라는 경제계의 오랜 과제와는 별개로 충분히 기릴 만한 가치가 있다.
이 회장의 사회환원 유산을 보면서 한국 기업인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다시 살피게 된다.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무한경쟁의 이 중차대한 시기에 새로 채워진 ‘한국형 족쇄’가 한둘이 아니다. 국가 간 경쟁이 곧 기업 간 경쟁인 판에, 교도소 담장 위를 걷듯 노심초사해야 하는 게 오늘날 한국 기업인들이다. 기업과 기업인들을 제대로 평가할 때 비로소 우리도 선진사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