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머릿속 맴도는 혼잣말, 건강한 '마음 진화' 산물

입력 2021-04-28 17:02
수정 2021-04-29 00:10
미국 미시간대 신경심리학 교수인 이선 크로스는 방송에서 감정조절법을 강의해 온 전문가다. 어느 날 그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익명의 시청자가 살해 협박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자신이 늘 가르쳐 온 내용대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단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야구 방망이를 품에 안고 잤다. 머릿속에 온갖 혼잣말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놈이 진짜 오면 어떡하지?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지? 총을 쏴버릴까?’ ….

그가 경험한 이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이런 경험을 한다. 그는 그간의 신경심리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저술한 《머릿속 잡담(Chatter)》에서 개인이든 경영자든 온갖 잡념과 사심에 지배당하지 않고 바람직한 의사결정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사람은 특별히 몰두하는 어떤 작업이 없는 한, 잠시라도 틈만 나면 온갖 내면의 욕망과 기억이 반영된 수만 가지의 혼잣말과 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1시간 연설에 대략 6000단어를 쓰는데, 머릿속 대화로는 1분 내에 그 분량을 초고속으로 소화해낼 정도라고 한다. 하루에 수행하는 대화와 소통 가운데 타인을 상대로 한 경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이 불가피한 머릿속 혼잣말들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다. 마치 신체가 통증 메커니즘을 통해 질병과 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기능을 진화시켜 온 것처럼, 머릿속 혼잣말은 마음이 자신의 지속과 생존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런 반복적 혼잣말 기능이 없으면 인간은 그 어떤 학습도, 성장도, 대응도, 변화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경과학계의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혼잣말이 종종 그릇된 방향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사실이다. 실험 연구에 의하면, 감정에 휩싸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예측 결과가 유의하게 낮은 수준으로 나왔다.

어떤 사태에 직면했을 때 심리적 ‘거리두기’가 되지 않으면, 누구나 감정에 지배당하게 된다. 먼발치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자와 그 사건의 당사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심리 상태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주식 투자에 성공하는 방법은 이미 다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큰 이익이나 손실이 났을 때 심리적으로 영향받으면서 이어지는 행동에 오판을 일으키게 된다. 성공한 경영자는 자신의 성과에 자족하면서 냉철함을 잃고 후속 의사결정에 실책을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 한 자식을 두고 다투는 두 어머니에 대한 명판결로 이름난 지혜로운 솔로몬 대왕조차도 정작 자신의 행실에서는 과오를 거듭했다.

모든 경영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불확실성하에서 무지의 제약에 갇힐 수밖에 없다. 외부 시장 환경과 내부 조직 상황에 대해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을 경청해도 서로 방향이 상충하는 게 대부분이어서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는 “마지막 결정 순간에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고대 현자 소크라테스가 귀 기울였다고 하는 ‘데몬(demon)의 소리’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방법은 어떨까. 제3자 지인에게 마음속으로 내 이름을 붙여준 뒤 그 지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할까를 생각해보거나, 지인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가정한 뒤 나라면 어떻게 그에게 자문해줄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 또는 미래에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에 내가 처할 편안한 상태를 상상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것 등이다. 현재 나를 뒤덮고 있는 온갖 혼잣말과 망상으로부터 적극적 거리두기를 수행함으로써 상황을 보다 객관화하고 올바른 결정에 이를 수 있다.

잡념과 망상, 넘쳐나는 외부 정보와 소음에 대처하는 방법으로서 고대 철학자의 막연한 가르침보다는 신경과학을 체계적으로 탐구한 저자의 지침이 현대인에게는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