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가 어제 청와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정식 건의했다. 반도체 패권전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투자와 고용 창출로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서에 담았다. 종교계·유림·상공업계에 이어 경제단체들까지 줄줄이 탄원에 나선 것은 이 부회장 ‘공백’에 대한 우려가 광범위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경제 5단체는 “잘못된 관행과 일탈은 엄격한 잣대로 꾸짖어야 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할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업인들의 안타까움이 물씬하다. 그래도 이런 요청이 아직 논쟁적이란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반도체와 백신 전쟁이 급박하지만, 누구도 법 앞에서 차별도 특혜도 받아선 안 된다는 게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여서다.
따라서 경제계 건의에 더해 주목해야 할 것이 ‘민심 흐름’이다. ‘오로지 증거와 법률로 판결한다’는 사법 대전제가 지켜졌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70% 정도가 ‘가석방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찬성 사유’도 흘려들어선 안 된다. 한경이 구글닥스를 통해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0%가 사면 동의 이유로 이 부회장이 ‘정치적 희생양’이란 점을 꼽았다. “(감옥에)들어간 것부터 이상한 일이며 가석방이든 사면이든 돼야 한다”(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식의 전문가들 지적은 이미 넘쳐난다. 대통령 탄핵이란 초유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그로 인한 민심 요동에 사법적 판단이 영향받았다고 보는 시각이 점증하는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한 법원의 논거는 이른바 ‘묵시적 청탁’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대통령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부정 청탁을 묵시적 방식으로 했다”는 것이지만, 모호한 개념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 ‘증거 재판주의’ 등 형사재판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한국형 뉴딜’을 위해 대기업을 압박하고, 코로나 대출 연장을 은행에 강제하는 현 정부도 지금쯤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정치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기업은 대통령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민은 4·7 재·보궐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로 ‘폭주 국정’을 심판했다. 이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를 진지하게 검토해 국정 정상화의 첫발로 삼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