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좌판'의 힘

입력 2021-04-27 17:50
수정 2021-04-28 00:21
암호화폐 거래소가 한창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암호화폐 붐으로 국내 1, 2위 거래소의 하루 수수료 수입만 100억원에 달하고 영업이익률은 무려 70%에 육박한다고 한다. 영업이익 대부분이 순이익이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금융위원장이 “폐쇄” 운운했지만 200개 안팎이 난립하는 이유다.

암호화폐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암호화폐로 가장 큰돈을 버는 게 투자자가 아닌 거래소라는 점은 확실하다. 거래소는 암호화폐 가격과 무관하게 거래만 활발하면 앉아서 돈을 번다. 증권거래소도 그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증권사 역시 매매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점에서 거래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른바 ‘좌판의 힘’이다. 멍석을 깔아놓고 투자자들을 기다리면 돈이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장사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돈벌이다. 한때 불법도박장이 우후죽순 생겼던 것도 그래서다. 좌판 중 으뜸은 확률은 매우 낮지만 한번 걸리면 초대박이 터지는, 그런 상품 거래를 중개하는 곳이다.

로또로 대표되는 복권판매업은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한 ‘좌판’이다. 전국 7000여 로또판매점의 연평균 수익은 3700만원으로 웬만한 기업의 초봉 수준이다. 1등 당첨자를 여러 번 배출한 ‘명당’ 판매점 중에는 연 수익이 10억원을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진짜 ‘인생 역전’은 로또 1등 당첨자보다 명당 판매점이란 얘기가 나올 만하다.

플랫폼 기업들도 따지고 보면 좌판을 잘 깔고 중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거간꾼이다.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등은 전에 없던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해 트래픽을 만들어내면서, 이를 토대로 광고를 수주하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수료도 챙긴다. 각종 배달앱과 중고거래 앱은 좀 더 순수 거간꾼에 가깝다.

일단 많은 손님을 끌 수만 있다면 ‘좌판업’만 한 장사가 없겠지만, 문제는 거기까지가 어렵다는 데 있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사업 리스크가 있고, 치열한 경쟁이나 인허가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로또판매점 입찰 경쟁률은 수십 대 1이고 판매 자격도 전과 달리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타이밍만 좋으면 소자본으로도 새로운 좌판을 깔 기회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큰돈 벌어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FIRE)족’을 꿈꾼다면 코인 가격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나만의 좌판을 깔아볼 생각을 하면 어떨까.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