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말에서 ‘정곡(正鵠)’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맹자다. 가장 적합한 말을 할 때 최상의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공황 충격에 빠져 자신감을 잃어가던 미국인들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일깨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이 그런 경우로 꼽힌다. 그와 반대되는 게 ‘허언’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공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허언이다. 지도자에게 이것만큼 큰 위기는 없다. 공자는 이럴 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한 게 있다.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외부환경이나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문제를 살피라는 일깨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장관들에게 “청년 일자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한 상황 전개를 이런 관점에서 짚어보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청년들이 코로나19의 충격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며 “청년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며, 기존의 대책을 넘어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고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할 중차대한 과제”라는 말도 했다. 청년(15~29세) 실업률이 10%(3월 기준)로 전체실업률(4.3%)의 두 배를 넘고, 잠재 구직자를 포함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25%를 웃도는 상황에서 꺼낸 얘기다.
야당은 대통령 발언이 전해지자 “본인은 책임이 없다는 유체이탈 화법” “병 주고 약 주나” 등의 말로 맹공을 퍼부었다. 야당은 그렇다고 쳐도, 당사자인 청년들이 보인 반응은 더 놀라웠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수행 국민평가에서 20대의 71.1%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1주일 전보다 7.9%포인트나 치솟았다. 대통령이 ‘특단의 청년대책’을 지시했는데 기대감을 보이기는커녕 되레 반감이 더 커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청년 실업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진단이 ‘정곡’에서 벗어난 탓이 커 보인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코로나 사태로 각국 청년들이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잃고 있다”며 이들을 ‘록다운(lockdown) 세대’로 지칭한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를 인용해 대책을 주문했다. 청년세대 실업문제가 ‘코로나로 인한 세계 공통현상’이라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읽혔다. 실상이 그렇지 않음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청년실업률(8.9~9.8%)이 줄곧 고공행진을 해왔다는 통계가 말해준다. 진단이 정확하지 않은데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리 없다.
한국의 청년세대가 유독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산업 양극화에 따른 경제 활력 둔화와 기존 취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고용노동 관련 법제를 꼽는다. 반도체·바이오·인터넷·게임 등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고용창출효과가 크지 않다. 이들 산업의 뒤를 이을 신산업과 고용효과가 큰 서비스업종은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런 판에 정치세력화한 대형 노동조합의 기득권 보호에 맞춘 제도와 정책이 더해져 청년세대의 일자리 진입이 몇 겹으로 막히게 된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주 발표한 국제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며 “구조개혁을 통해 청년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더 제공하라”는 훈수를 둔 배경이다.
‘특단의 대책’은 이 두 가지 족쇄를 푸는 데서 실마리를 열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을 거머쥔 쪽의 수용이 없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대통령이 사명감과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만 해낼 수 있다. 힘없는 공무원들을 아무리 닦달한들 세금을 투입해 월 27만원씩 주는 ‘세금 알바’를 70만 개 가까이 쏟아낸 지난달의 ‘특단 대책’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에 청년세대의 방황과 좌절은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다. 투기판을 방불케 하는 암호화폐 시장의 올해 1분기 신규 투자자 가운데 33%(81만6039명)가 20대이며, 30대도 31%(78만8775명)에 달한다는 통계는 ‘한탕’밖에 기댈 게 없어진 청년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단의 대책’은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