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수산 선생님이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이라는, 선생님의 50년 작가 생활을 회고하는 산문집을 냈습니다. 그 속에 제 이야기도 있어서 선생님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제가 춘천 김유정문학촌장으로 온 다음 한 달에 한 번 점심때 모여 짬뽕을 함께 먹는 ‘춘뽕모’라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멤버 중 한 분인 박진오 강원일보 사장이 며칠 전 아침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른 새벽 한수산 선배님의 산문집을 읽다가 반가운 이름을 만났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인데 이것만은 제대로 투자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당시 자동차 값의 책상을 마련했다는 순원형. 프로 작가의 그 감각에 감동합니다. 지금은 우리 문단계의 원로이신 오정희 선생님의 남편이자 내 학보사 시절 부주간·주간 교수였던 박용수 전 총장님께서 제게 물려주신 책상이 있었지요. 대한민국 초대 교육부 장관이 사용하던 책상을 물려받고는 그 책상과 한동안 함께했던 효자동 시절이 생각납니다. 적빈했던 시절이라 그 창연한 책상을 함께할 공간이 없어 결국 졸업과 함께 이별해 어느 고물상으로나 갔을 책상이 이 아침 그리워지는 건 순전히 순원형 탓입니다. 나는 그 책상을 사랑했을까?”
그래서 책상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누가 문학상을 받으면 제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금 오래 안 간다. 그 돈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책상 하나를 장만해라. 휴식하더라도 거실의 소파가 아니라 서재 책상에 앉아 쉬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책상을 사라. 우리한테는 책상이 일터 아니냐. 택시기사에게는 택시 운전석이 일터다.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이 운전석이 싫으면 그 차 사고 나지 않겠느냐. 반대로 자기 택시의 운전석을 늘 깨끗하게 하고, 평생 일터답게 꾸며놓고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 책상은 바로 그런 자리이다. 일터이고, 휴식 공간이고, 생각의 공간이다. 상금을 받았을 때 거기 앉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휴식을 하더라도 소파보다 거기에 앉아 쉬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 책상을 사라.”
제 책상은 26년 전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장만한 것인데 그때는 같은 급의 자동차라도 일반 승용차로 판매되는 자동차보다 택시용으로 나오는 자동차 값이 세금 등등의 차이로 일반 승용차보다 가격이 많이 낮았습니다. 상금 받은 김에 아주 마음먹고 택시기사의 택시처럼 평생 일터로 그때 공장에서 택시용으로 나오는 면세 승용차 가격 정도 들여 책상을 장만했습니다. 그걸 한수산 선생님과 어떤 문학상 심사를 하면서 얘기했던 거지요.
저는 그 책상에서 동인문학상 이후의 모든 작품을 썼습니다. 아마 《은비령》이 그 책상에서 쓴 첫 번째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작가들에게는 책상이 일터며 휴식처며 생을 바쳐 지켜야 할 진지이며 참호인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