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과세를 놓고 정치권에 뒷북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득세법 개정에 따라 암호화폐 투자자는 내년부터 거래로 얻은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예정대로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암호화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금부터 매기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과세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개정 소득세법은 가상자산의 양도·대여로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하도록 했다. 기타소득은 이자·배당·사업·근로·연금 등 소득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득을 모두 일컫는 개념이다. 로또 등 복권 당첨금과 도박으로 번 돈도 기타소득에 해당한다. 기타소득이 기본 공제액인 연간 250만원을 넘어서면 20%(지방세 포함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내년에 암호화폐 거래로 1000만원의 수익을 낸 투자자는 1000만원에서 250만원을 뺀 나머지 750만원의 22%, 즉 165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암호화폐와 관련된 제도도 마련해 놓지 않고 무턱대고 세금부터 내라는 건 과도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암호화폐 과세를 2023년까지 유예하고 기본 공제액을 주식처럼 5000만원으로 늘려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6일 오후 3시 현재 4만6000여 명이 동의했다.
지난해 암호화폐 과세안을 심의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 사이에서도 과세 유예 등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기재위 조세소위 당시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할 준비가 다 됐다’는 정부 말을 믿고 과세안에 찬성했다”며 “지금은 작년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은성수 금융위원장 말처럼 정부가 암호화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과세하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은 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암호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아예 암호화폐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과세와 투자자보호 등 제도 전반을 논의하기로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암호화폐 소득에 로또 당첨금 수준으로 과세하고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엄포만 놓을 게 아니라 제도화와 투자자 보호 방안 등을 전문가들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 각 당내에서 암호화폐 과세를 놓고 의원 간 찬반이 엇갈려 통일된 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기재위원 중에서도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과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암호화폐 과세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양경숙 의원은 “암호화폐를 화폐가 아니라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재화로 판단한다면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공평과세 원칙에 부합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오형주/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