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여 년 만에 꿈에서만 그려보던 '환상의 커플'의 결합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일까요.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와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라 불리는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와의 남다른 인연이 새로운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빈 필은 지난해 후반부터 얼마 남지 않은 독일·오스트리아계 거장 지휘자인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녹음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24일에는 교향곡 3번의 녹음을 소니 클래식을 통해 발매했습니다. 앞서 올 3월에는 브루크너의 작품 중 거의 연주되지 않던 '00번 습작교향곡(Studiensymphonie)'과 '교향곡 0번'의 녹음도 마쳤습니다. 작년 10월에는 대작인 8번 교향곡도 내놨습니다.
(브루크너는 습작교향곡은 작품성이 모자란다고 생각해 정식으로 번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 이후 주요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사망한 탓에 0번부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도 9번 교향곡을 3악장까지만 마치고 사망합니다.)
빈 필과 틸레만은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인 2024년까지 00번부터 9번까지의 11곡 교향곡 전곡 녹음을 마칠 예정입니다. 브루크너 생전인 1880년대 브루크너와 빈 필이 협업 관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140여 년 만에 인연이 완성되는 셈입니다.
빈 필은 그동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칼 뵘,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거장 지휘자들과 수많은 브루크너 개별 교향곡들의 녹음들을 남겼지만, 단일 지휘자가 전곡 녹음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직까지 빈 필이 브루크너 전집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탄탄한 구조를 지닌 데다가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음향, 유려한 현악 파트, 금관 악기군의 총주를 요구하는 고난도 곡들인 까닭에 그의 곡들을 가장 잘 연주하는 악단으로는 빈 필이 단연 첫손에 꼽혀왔습니다. 브루크너의 모국 대표 연주단체이자 주 공연장인 빈의 무지크페어라인그로서잘(황금홀)에서 빚어지는 황금빛 음향감이 브루크너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을 얻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간 브루크너를 대표하는 명반도 빈 필을 통해 나왔었습니다. 지휘자 칼 뵘의 브루크너 교향곡 4번(낭만적),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마지막 녹음인 교향곡 7번,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교향곡 9번 등이 대표적입니다. 빈 필은 브루크너 교향곡 6번과 8번의 초연을 맡은 악단이라는 점에서도 브루크너와 인연이 남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그동안 빈필은 단일 지휘자에 의해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진 않았습니다. 음악계의 라이벌인 베를린필이 카라얀 지휘하에 이미 1970년대에 브루크너의 9개 교향곡을 녹음했고, 귄터 반트가 쾰른방송교향악단과 9개 교향곡을 녹음했던 것 등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녹음을 꺼렸던 브루크너 거장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뮌헨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3번부터 9번까지 교향곡 녹음도 그의 사후 선을 보였습니다.
이제 틸레만이라는 단일 지휘자와의 공동 작업으로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갖추게 되면서 '미싱 링크'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의 연주가 브루크너 애호가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해줄지 궁금해집니다.
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