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현대차가 테슬라 충전 막은 의도

입력 2021-04-26 07:20
수정 2021-04-26 09:03
-'내돈내산' 충전기에 테슬라는 안돼

현대기아차그룹이 테슬라 이용자들의 초급속 충전소 이용 항의에 발끈했다. 최근 고속도로에 집중 설치된 초급속 충전기 이핏(E-Pit) 이용 때 어댑터 사용을 금지시키자 테슬라 이용자들이 정부에 집중 항의를 쏟아낸 탓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초급속 충전기 설치는 EV 보유자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이 의도적으로 테슬라만 충전을 막았다는 목소리다.

그러자 현대기아차도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초급속 충전소 이핏(E-Pit) 설치 비용을 전액 현대기아차가 부담했고 정부로부터 충전기 설치 보조금은 전혀 받지 않아서다. 게다가 휴게소 내 영업권에 대한 비용도 도로공사에 지불하는 만큼 테슬라 이용자들의 항의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따라서 18분에 배터리의 80%가 충전되는 초급속 충전기를 이용하려면 현대기아차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라고 오히려 역공을 펼쳤다. 현대기아차로선 '내돈내산' 충전기에 슬며시 묻어가려는 경쟁자 의도(?)가 은근 괘씸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테슬라 이용자들의 항의는 현대기아차가 아니라 테슬라코리아를 겨냥하라고 맞받았다. 수입사가 고객을 위해 충전 인프라를 넓히는 게 당연해서다. 그러자 테슬라코리아는 현재 200여곳에 달하는 완속 충전과 30곳에 불과한 급촉 충전소 외에 올해 250㎾급의 초급속 충전기 27곳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V3 슈퍼차저로 불리는 초급속 충전기는 5분에 120㎞ 주행이 가능한 전력을 담을 수 있어 급속 충전기 대비 충전 시간이 반으로 감소한다. 물론 누적 판매 대비 초급속 27곳은 여전히 부족한 숫자지만 테슬라 보유자로선 설치만 해도 반가운 일이다.

사실 충전을 놓고 벌어지는 현대기아차와 테슬라의 자존심 싸움은 이른바 충전 표준의 준수 여부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전기차 보급과 충전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전기차 충전규격 표준을 글로벌에서도 다수가 채택한 DC콤보 타입1으로 통일했다. 반면 테슬라는 독자 규격을 사용하는 만큼 DC콤보 타입1 충전기를 이용하려면 어댑터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초급속 충전기에 사용 가능한 어댑터가 나오면 충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인 반면 현대기아차는 어댑터가 국가 표준을 통과해도 사용은 어렵다고 맞선 형국이다. 심지어 몰래 어댑터 등으로 충전기를 이용하다 적발될 경우 법적 조치도 경고했다. 적어도 초급속 충전에 관해선 테슬라에 관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테슬라 충전을 막은 진짜 배경은 현재와 미래 시장의 경쟁력 확보 차원이다. 대외적으로는 '내돈내산' 충전기인 만큼 현대기아차 EV 구매자 우선을 내세우지만 사실 충전사업은 이용자가 많을수록 전력 유통량도 많아지는 구조여서 굳이 다른 전기차의 충전을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 지금은 환경부 등이 충전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전력 유통에서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향후 민간에 맡겨지면 충전소는 곧 내연기관의 주유소와 같은 에너지유통업에 해당되는 만큼 전기를 많이 팔수록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겉으로는 EV 보유자의 편리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핏은 훗날 전개될 전력유통 사업의 중요 현장이어서 테슬라의 접근을 막는 셈이다.

별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지만 테슬라 입장에서도 현대기아차의 속도감 넘치는 전동화 행보는 위협적일 수 있다. 특히 인프라 구축 속도만 보면 단연 으뜸이다. 이는 그만큼 현대기아 또한 제품 경쟁력에 확신이 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전용 플랫폼 기반의 EV(아이오닉5, EV6)로 테슬라와 제품력을 동등하게 끌어올렸다면 지금부터는 시장을 빼앗아오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이핏'은 현재와 미래의 EV 시장을 고려한 투자여서 경쟁사 이용 제한은 불가피한 조치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가 이핏에 부여한 역할이 '전기차 시장의 빠른 선두 전환'이기 때문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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