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드러내는 與 대권주자…물밑 신경전

입력 2021-04-25 17:30
수정 2021-04-26 03:30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들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 진입에 앞서 물밑 차별화 경쟁에 나섰다. 여권 내 지지도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러시아 백신 도입을 주장한 데 이어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 해결을 위해 전례없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히는 등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민주당 직계’ 이미지를 강조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민생 투어를 통해 반전을 노리고 있다. 선명성 행보 시작한 이재명이 지사는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경기도는 긴급대응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전례없는 대책을 검토 중”이라며 “과한 게 모자란 대응보다 낫다. 이번주 안에 경기도 31개 시·군과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자체장인 이 지사가 국제적 현안인 오염수 방류 문제에 전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의 대권 행보로 풀이된다. 정부·여당이 해결에 지지부진한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의 정책적 역량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전날에도 “안전성만 검증된다면 러시아산이라고 제외할 이유가 없다”며 러시아 백신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국민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비록 예산이 낭비되는 한이 있어도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게 차라리 낫고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정 전 총리가 지난 23일 자신의 러시아 백신 도입 주장에 “물량이 남으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비판한 말을 맞받은 것이다.

이 지사는 이날 ‘법의 날’을 맞아 “핀란드와 독일처럼 우리도 형벌의 실질적인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세균 ‘직계’ 행보·이낙연 ‘현장’ 찾아정 전 총리는 25일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대권 몸풀기에 나섰다. 사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 사저를 찾았던 그가 이번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한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지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민주당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이번주 지역 일정을 아예 경제 현장 방문으로 구성했다. 26일 부산 해운항만노조를 방문하고 27일엔 대구에서 ‘방역과 백신’을 주제로 선별진료소를 찾는다. 기업인 출신이라는 강점을 활용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재건을 추진할 자질을 갖췄다는 주장을 내세운다는 전략이다.

이 전 대표는 이미 호남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비공개 민생 투어를 하고 있다. 전남지사와 총리로 일하던 시절 찾았던 현장을 다시 방문해 민심을 겸허하게 듣고 초심을 되찾겠다는 취지다. 정 전 총리에 앞서 봉하마을도 방문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섬진강 일대 현장을 다시 찾아 이재민들의 고충을 들었다. 지난해 태풍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 산불을 겪은 강원 삼척·고성 현장도 찾았다. 총리 시절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수첩에 메모하는 모습이 여론의 지지를 얻었던 만큼 다시 현장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선 경선 일정도 물밑 신경전민주당 잠룡 ‘빅3’로 불리는 이들은 각기 다른 전략을 펼치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에서 여권 1위인 이 지사는 현 정부에 무조건 동조하기보다 정부 정책이 지지부진한 영역을 찾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전략상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데다 정권교체 여론이 많은 것을 감안할 때 현 정부에 불만이 있는 세력까지 흡수할 수 있어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야당으로선 대선을 정권교체론으로 치러야 하는데 현 정부와 색깔이 다른 이 지사가 여권 주자로 나오면 상황이 애매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지사와 달리 정 전 총리는 ‘민주당 정통성’, 이 전 대표는 ‘친문 색채’를 강조하고 있다. 대선 경선에서 당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친노·친문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이다. 전통적인 친노·친문 진영의 유력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누가 ‘친문 표심’을 잡느냐가 경선 결과를 가를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여론조사에선 이 지사가 독보적인 1위지만 경선은 다른 문제”라며 “이 지사도 그걸 모를 리 없는 만큼 당 주류를 포섭하기 위한 전략에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예비경선은 6월 치러져야 하지만 친문 진영에선 ‘경선 연기론’도 언급되고 있다. 차기 지도부가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일정은 물론 경선 룰도 조정될 여지가 있는 만큼 대권 주자들의 물밑 신경전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