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韓 경제 파고드는 '7가지 위기 징후'

입력 2021-04-25 18:04
수정 2021-04-26 02:29
1년 전 ‘방역 후진국’으로 전락했던 미국이 다가오는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기해 코로나19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또 하나의 독립일을 구상하는 것을 보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급변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 한국 경제는 제대로 길을 찾고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위기 징후군’이 파고들고 있다.

첫째, 미·중 간 경제패권 경쟁 과정에서 ‘새로운 넛 크래커(new nut cracker)’ 국면에 빠질 위기다. 넛 크래커는 1990년대 저임금의 중국과 기술의 일본 사이에 낀 한국 수출상품의 위상을 꼬집는 말이었다. 새로운 넛 크래커는 ‘반도체 굴기 전쟁’으로 치닫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 다툼 속에 낀 한국을 말한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이 맺은 반도체 협정이 부흥의 뿌리가 됐고, 반도체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위협에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견제로 위기를 피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 ‘안미경중(安美經中)’ 대외정책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둘째, 오히려 ‘마냐냐(manana) 경제관(경제를 막연하게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이 문제다. 마냐냐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가 1년을 넘어가면서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국민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을 비교해 보면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하는 미국은 경기 부양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국민을 안정시키는 반면 프레임에 갇힌 한국은 신중한 경기 진단에 대해서조차 ‘위기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몰아낸다.

경제 현안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경기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너무 낙관적으로 보면 정책 실기와 땜질식 처방만 남발하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이듬해 4월 침체 우려가 나왔는데도 “무슨 얘기냐”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잘못된 진단부터 우리 경기를 꼬이게 했다.

셋째, 경제정책이 ‘코브라 역설(cobra paradox)’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가슴 아프다. 코브라 역설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통치할 때 골치 아픈 코브라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지급한 보조금이 오히려 개체 수를 늘렸다는 정책 실패에서 유래됐다. 미봉책은 문제 해결보다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자주 활용된다.

경제정책의 성공 열쇠는 ‘타이밍과 고통 분담’ 여부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정책 타이밍을 놓치고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면 나중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각종 코로나 지원책 효과도 점검해봐야 할 때다.

넷째, 부동산 대책의 본질을 지적한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투자전략가인 스리 쿠르마는 ‘강남 아파트에 거품이 낀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사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산다’고 주장한다. 서울 아파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강남 불패론’과 같은 시각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집값 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왔다. 투기 과열로 지정한 강남 지역에는 마치 본때를 보여주듯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투기의 본질인 기대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경착륙’보다 ‘연착륙’ 대책이 더 효과적이다. 암호화폐 대책도 마찬가지다.

다섯째,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도 우리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한다. 뜨거운 물에 넣은 개구리는 곧바로 뛰쳐나와 살고, 천천히 온도를 올린 물에 넣은 개구리는 온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죽었다는 실험에서 유래된 용어다. 위기가 왔는데도 체감하지 못한 채 서서히 골병 들어가는 우리 경제의 자화상이다.

여섯째, 경제주체의 위기 인식과 관련한 경고도 눈에 띈다. 제임스 버크의 명저에서 유래한 ‘핀볼 효과(pinball effect)’가 대표적이다. 볼링 핀처럼 위기 징후는 도미노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위기 징후라도 무시하다 보면 이후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빠져든다는 경고다.

일곱째,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외면하는 ‘무각통증(disregard)’도 문제다. 국회의원은 당리당략으로 경제 입법을 처리한다. 노조는 소속 기업이 망해도 거리로 뛰쳐나온다. 투자자는 위기가 닥쳐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네탓 내탓 할 때가 아니다.” 우리 경제에 파고드는 ‘7대 위기 징후’부터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