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운의 상업은행 빌딩 새주인 찾는다…한은, 소공별관 매각

입력 2021-04-25 10:00
수정 2021-04-25 17:28
1978년 남산3호터널이 뚫리자 금융계를 주름잡던 옛 상업은행은 크고 작은 사건들로 몸살을 앓았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에 휘말려 상업은행 은행장이 구속된 데 이어 명동 지점장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사건이 이어지자 나쁜 풍수지리 탓이라는 구설수가 돌았다. 서울 중국 소공동에 자리잡은 상업은행 본점 건물이 남산 3호 터널에서 나오는 나쁜 ‘기(氣)’를 정면으로 받는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다. 1994년 당시 상업은행 정지태 행장이 집무실 집기를 터널 반대편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한국은행이 지금의 소공별관인 이 건물을 2005년 사들인다. 한은이 기구한 운명의 소공별관을 재매각하기로 하면서 다섯 번째 주인을 맞을 전망이다. 지상 13층, 지하 1층 건물25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소공별관 매각을 위한 감정평가 용역’ 공고를 냈다. 다음달 4일까지 부동산 감정평가법인으로부터 입찰제안서를 받을 계획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건설하고 있는 통합별관 완공 이후 소공별관을 매각하기로 했다”며 “적정 매각가를 산출하기 위해 감정평가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2019년 12월 서울 남대문로 통합별관 신축공사를 착수해 오는 2022년 3월 28일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만간 소공별관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은 임직원들은 통합별관 공사 기간 동안 옛 삼성 본관 건물과 소공별관, 강남 본부 등에서 분산 근무 중이다. 소공별관은 한은 경제통계국과 외자운용원, 경제연구원 임직원이 쓰고 있다. 매각대상은 소공별관과 인접한 주차빌딩 등이다. 소공별관은 지하 1층, 지상 13층 빌딩이다. 1965년 준공된 이 건물은 2004년 리모델링했다. 2005년부터 한은 소공별관으로 이용소공별관은 1899년 문을 열고 외환위기 이전까지 유력 시중은행으로 통한 상업은행의 본점 자리다. 상업은행은 한때 한국의 대표 시중은행을 상징하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의 한 곳으로 금융계를 주름잡았다. 이 은행은 1965년 소공동에 본점(현 한국은행 소공별관) 준공식을 열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여해 테이프를 자르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1월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기아 진로 해태 등 대기업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상업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도 위기를 맞는다. 부도난 기업에 빌려준 대출금을 상환받을 길이 막히자 상업은행은 정부의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른다. 지난 1998년 한일은행과 합병돼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구조조정 당하고, 본점 건물도 매각된다.

SGS컨테크라는 부동산개발회사가 매입했지만 자금난에 시달리며 2003년 결국 부동산임대업체인 해창에 재매각한다. 해창은 2004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금의 사무실 빌딩으로 탈바꿈했다.

한은은 2005년 사무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본관을 마주하고 있는 이 건물을 사들인다. 해창에 보유한 회현동 부지와 현금 220억원을 지급하고 건물을 매입한다. 당시 소공별관 시가는 7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2020년 기준 소공별관 부지의 공시지가만 따져도 862억원으로 추산된다. 건물·토지 시가는 수천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풍수지리 구설수 오르기도 한은 소공별관은 풍수지리적으로 나쁜 기운이 돈다는 소문도 많았다. 터널을 통해 전해지는 기운을 풍수가들은 흉한 대상으로 삼았다. 2001년 남산2호 터널이 재개통될 때 터널 입구에 자리잡은 신라호텔 매출이 크게 줄기도 했다. 호텔은 터널의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입구에 액막이 탑을 설치하기도 했다.

소공별관도 비슷한 구설에 오르면서 영향을 받았다. 국민은행이 과거 주택은행과 합병할 당시 이 건물을 사옥으로 쓰려다가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한 바도 있다.

한은에서도 이 건물을 매입한 직후 직원들이 화재, 교통사고 등에 시달리자 출입문의 위치를 3호 터널과 마주하는 정면에서 한은 본관을 바라보는 오른쪽으로 살짝 틀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공별관 입주한 한은 임직원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소공별관에 자리 잡아 400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굴리는 외자운용원 등은 201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운용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나쁜 기운이 흩어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익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