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문논술칼럼 15, 다각도의 비교 2회차입니다. 지난 시간 문제를 풀어볼게요. 세 제시문의 공통 소재는 ‘경쟁’입니다. (가)는 육상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의 경쟁에 대한 시각을 대변하는 화자의 내면을 담고 있고, (나)는 개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을 제시합니다. 또한 (다)는 소설 남한산성의 일부로, 김상헌과 최명길이 응전과 화친을 두고 다투는 모습의 일부입니다. (가)에서 경쟁은 긍정적입니다. 순수한 열정과 함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진정한 연대를 바탕으로 한 경쟁은 개인의 최선을 유도하고 연대를 공고하게 만듭니다. 한편 (나)에서 무리한 경쟁은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다)에서 전쟁은 국가 간 경쟁이므로, 가장 커다란 규모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간의 전쟁은 인명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김상헌의 주장처럼 국가의 내실을 기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경쟁이 긍정적 작용을 하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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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들은 경쟁에 대해 상이한 시각을 갖고 있다. (가)와 (나)는 경쟁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인식을 전달한다. 한편 (다)에서의 경쟁은 국가 차원의 전쟁이며, 이는 경우에 따라 양면적 작용을 할 수 있다.
우선 (가)는 화자의 1인칭 시점을 통해 경쟁의 긍정적 의미를 전달한다. (가)의 상황 속에서 어른들의 경쟁은 이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조리와 부패로 점철된다. 그러나 화자를 중심으로 한 선수부 학생들의 경쟁은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서로간의 자극이며, 연대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고하게 만든다.
반면 (나)가 경계하는 경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이기적 태도로,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한 동일한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더 빠른 기록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가)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목초지의 사례에서는 서로간의 소통이 없고 배타적인 경쟁인데 반해 (가)의 경쟁에서 선수들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의 소통 수준을 갖고 있으며 신뢰관계를 잃지 않는다.
(다)는 국가 간 전쟁을 앞두고 결사응전을 주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국가 간 관계에 주목하면 (다)의 경쟁은 (나)의 비극과 유사하다. 국가간의 군사경쟁은 결국 한 쪽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나지만, 모든 국가가 전쟁과 같은 경쟁에 임한다면 (나)와 같은 파멸은 필연적이다. 서로간의 소통이 실리적 수준에서만 머무르는 데다가 자원의 제한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의 주장을 전쟁의 결과와 관련짓지 않고 본다면, 국가간의 경쟁은 국가 내부의 구성원들을 자극하여 발전을 위한 단합을 이끌어내므로 긍정적 효과도 있다. 이 경우에는 (가)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기출문제를 풀어보도록 할게요. 같이 다룰 논제는 연세대학교 2020학년도 수시 기출문제입니다. 원문은 다소 길어 임의로 축약하였지만, 제시문의 취지나 난이도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시간에 답을 해설할 테니, 문제를 보면서 답을 구상하고 한번 써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소문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가), (나), (다)를 비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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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방송국은 물론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밖에도 여러 군데 또 다른 방송국이 있는 것을 안다. 시골을 가면 촌마다 방송국이 하나 이상 있다. 우물가에 모여드는 입빠른 여인들이나 버드나무 그늘에서 담배 피우는 노인들의 엇구수한 이야기 터 같은 것이 그 동리의 모든 놀랄만한 뉴스의 교환소요, 확대처요, 방송국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무수한 방송국이 서울의 골목마다 생겨 있게 된다. 누가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확실히 안다고 자신할 수 있으랴. 이 허술한 지식에 기대어 섣불리 과학을 논하거나 장차 일어날 일을 점치기는 더더구나 불가하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에 대한 소문이 어디선가 흘러나오고 깜짝 놀란 사람들 사이에서 금세 퍼져나가는 것은 인간사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제시문 (나)
Societies, no matter how stable they may appear, are on-going things. The world is in a state of continuous transformation, and as life conditions change, knowledge must keep pace. Thus, the emergence of new hypotheses and their acceptance as part of a modified view is a social process. As long as there is a possibility of communication among those caught in a crisis, social reconstruction will to some extent depend upon the reactions of those involved as they affect one another as well as upon their reactions to the events. It is by consulting each other and comparing their experiences that they alter their ways of acting. Rumor is an important part of this process of transformation. As such, it is not an abnormal phenomenon, but an integral part of the processes whereby men develop more adequate ways of coping with new circumstances. Rumor is a social interaction whose component parts consist of interpretative and communicative a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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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이야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사람들,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소식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속보와 뜬소문이 굳건한 사실인 양 인정받고, 진실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진실만을 똑바로 주시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리 더 가치 있게 변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새로운 한담거리나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얻고자 애쓴다면, 우리의 정신은 온전히 진실만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우리가 감정에 휩쓸려 허둥대지 않고 현명하게 처신한다면, 타인의 불행과 공포를 접하며 느끼는 사소한 두려움이나 하찮은 즐거움은 결국 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 포인트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제시문들을 분석하면서 비교를 더해가는 방식입니다. (다)가 가장 복합적이므로, 단순한 (가)와 (나)를 먼저 대조한 이후에 (다)의 비교를 해보면 체계적으로 답안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