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 곳 많아지자…'증세'로 바뀐 미국 법인세 전략

입력 2021-04-26 09:00

세금은 공동체 번영의 주춧돌이자 국가 발전의 근간입니다. 국방과 치안, 경제발전, 복지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들은 재정 확충에 심혈을 기울이고 모든 국민(법인을 포함해)에게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죠. 하지만 가급적 세금을 적게 내려는 게 인간의 심리이다 보니 세율이 낮은 곳으로 국적을 옮기거나 사업장을 이전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세금이 없거나 매우 적은 버뮤다나 버진아일랜드 등은 이런 사람과 기업들을 끌어들입니다. 조세피난처(tax haven)로 불리는 곳들이죠. 법인세 인하 눈치싸움 그동안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법인세를 얼마나 부과할지 눈치싸움을 해왔습니다. 상당수 국가가 기업들에 투자 유인을 제공하고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에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아일랜드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아일랜드는 법인세를 12.5%로 대폭 인하해 적극적인 기업 유치에 나섰고, 이 덕분에 국가 부도 5년 만인 2015년 경제성장률이 7.8%까지 치솟았습니다. 글로벌 기업 유치 총력전을 펼친 아일랜드에 ‘켈틱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2017년 취임하면서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춰 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유턴)를 지원했고, 이 덕분에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세 도입 논란기업들은 기업 나름대로 세금을 줄이기 위해 기발한 전략을 쓰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구글의 ‘더블 아이리시 위드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Dutch Sandwich)’입니다. 다소 복잡한데 쉽게 설명하자면 구글이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법인을 세우고, 미국 본사에서 개발한 지식재산권을 이 법인에 헐값에 넘깁니다. 아일랜드 법인은 다시 아일랜드와 네덜란드에 각각 자회사를 설립하고, 아일랜드 자회사는 세계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을 지식재산권 사용료(로열티) 명목으로 네덜란드 자회사에 넘긴 뒤 이를 아일랜드법인으로 다시 몰아줍니다. 자회사에서 송금받는 로열티는 원천징수하지 않다는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간 조세협약을 이용해 네덜란드 자회사를 샌드위치처럼 아일랜드법인과 아일랜드 자회사 사이에 끼워넣은 것이죠. 이런 방식으로 안 낸 법인세가 세계적으로 매년 1000억~2400억달러(약 266조원)로 추정됩니다.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통신(IT) 기업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세금을 아낍니다.

유럽연합은 그래서 디지털세(稅) 도입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한 나라에 사업장을 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데이터 판매 등 디지털 서비스 매출을 올린 해당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고, 본국 세율보다 낮아 덜 낸 부분은 본국이 추징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IT기업을 타깃으로 한 디지털세 도입에 반대하며 관세보복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뒤바뀐 미국의 법인세 전략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취임하면서 입장이 확 바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외치며 4조2000억달러(약 462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과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 재원을 마련하고자 법인세 증세를 꾀하고 있는 것이죠. 법인세율을 28%로 올리려 하는데 미국만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 같으니까, 이번에 국가들이 동시에 올리거나 최소한 하한선(21%)을 정하자고 ‘국가 간 담합’을 제안한 것입니다. 또 매출을 올리는 곳에 세금을 내도록 하자면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제조·서비스 업체로까지 세금 부과 대상을 넓히려는 것입니다. 미 재무부는 각국에 발송한 공문에서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세제 개편안에 대해 세계 각국과 기업들의 입장이 엇갈립니다. IMF가 최근 발표한 ‘2021 재정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쏟아부은 재정은 16조달러(약 1경8000조원)에 달하며 그 결과 선진국의 평균 재정적자는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2.9%에서 11.7%로 뛰었습니다. 재원 마련을 위해 손쉽게 기업에 세금을 매기자는 유혹에 혹할 만한 제안인 셈이죠. 법인세가 높은 편이고 다국적 기업들이 자국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독일 프랑스 등은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법인세율이 낮은 스위스 아일랜드 등은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법인세율이 높은 편(27.5%)이어서 영향력은 적은 편이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차그룹 등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 매출 비중이 높다 보니 생산과 판매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 내 법인세 인하,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각국의 동시 법인세 인상(혹은 하한선 설정) 추진 등 엇갈린 전략을 쓰지만 모두 ‘미국 우선주의’로 볼 수 있을까.

② 재정 확충을 위한 세금 징수와 외국기업 유치 등 경제활력 증진을 감안하고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적절한 법인세 세율은 얼마가 적당할까.

③ 구글이 국내에서 연간 5조원 이상의 광고수익을 올리지만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글로벌 법인세 체제가 만들어지면 기업들의 대응은 어떻게 바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