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된다?…김일성 회고록 출간 '논란'

입력 2021-04-22 11:05
수정 2021-04-22 11:31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원전 그대로 국내에서 출판됐다. 해당 도서는 대법원 판결에서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2일 현재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등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는 '세기와 더불어 항일회고록 세트'가 28만원에 예약 판매되고 있다. 북한이 발간한 8권 그대로 구성된 세트다.

출판계에 따르면 민족사랑방은 지난 1일 '세기와 더불어 항일회고록 세트'를 국내 처음으로 정식 출간했다. 민족사랑방은 사단법인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북한 관련 무역 등을 하는 중소기업인 남북교역 주식회사 대표인 김승균 씨(83)가 지난해 11월 출판사로 등록했다.

민족사랑방은 인터넷 서점 책 소개에 "1945년 8월15일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그날까지 중국 만주벌판과 백두산 밀영을 드나들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생생한 기록"이라며 "1920년대 말엽부터 1945년 해방의 그날까지 20여 년간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싸워온 투쟁기록을 고스란히 녹여 낸 진솔한 내용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고 적었다.

이어 "이 책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과 비교할 때 투쟁의 대상이 하나는 민족내부의 좌우익 갈등이라면 다른 하나는 일본제국주의라는 점과 무장투쟁에 본인이 직접 20여 년간을 투쟁했던 생생한 기억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비견할 수 없다 하겠다. 이 책의 출판이 민족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남북화해의 계기가 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며 "판매 수익금은 통일운동기금에 사용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담은 이 책은 1992년 4월 15일 김일성 80회 생일을 계기로 출판돼 1998년까지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대외선전용으로 발간됐다.

문제는 이 책의 출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는 반국가단체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한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11년 정부 허가 없이 방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모씨에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그가 소지한 '세기와 더불어' 등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김일성이 숨진 직후인 1994년 8월에는 출판사 가서원이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에서 출판하려 했다가 출판사와 인쇄소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출판사 대표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는 김일성 미화와 사실관계 오류 등 회고록 내용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불어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유해 간행물 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거나 체제전복 활동을 고무 또는 선동하여 국가의 안전이나 공공질서를 뚜렷이 해치는 것"으로 "보편타당한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민족사적 정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을 유해 간행물로 보고 있다. 심의 결과 유해 간행물로 결정되면 수거, 폐기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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