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도시공간·인재 혁신…더 큰 '대구의 미래' 시작됐다

입력 2021-04-22 15:43
수정 2021-04-22 15:45

지난 5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옵티머스시스템(대표 김남혁)의 성서산단 생산현장을 찾았다. 2009년 창업해 가상현실(VR)기술로 글로벌 군사훈련용 시뮬레이터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구시의 다섯 차례에 걸친 로봇제어모듈 연구개발(R&D)지원이 결정적이었다. 2019년 12억원이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58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50억원으로 껑충 뛸 전망이다. 김남혁 대표는 “스크린 상호교전기술 등 가상훈련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미국 동남아 중동시장에서 300억원 규모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며 “6600㎡의 공장을 증설하고 인력도 크게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의 신산업 육성정책이 기업성장과 산업단지활성화, 고용창출로 이어진 사례다. 권영진 시장, 산업·공간 혁신 주도권 시장이 2014년 취임 이후 주도해온 물, 에너지, 미래자동차, 의료, 로봇 등 5+1 신산업 분야의 2014~2018년간 연평균 부가가치 성장률은 대부분 두 자릿수를 넘었다. 통계청 자료를 대구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대구 10대 산업의 연평균 부가가치 성장률은 의료산업이 24.1%(전국 평균 9.3%), 로봇 22.5%(7.1%), ICT 15.9%(7.6%), 물산업 14.5%(6.6%), 에너지 11.5%(8.4%), 자동차 4.9%(-2.1%)로 전국 평균보다 크게 높았다. 섬유산업은 -1.53%였지만 기계(7.6%), 뿌리산업(4.2%)도 대구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권영진 시장이 이끄는 민선 6·7기 동안 대구의 공간구조도 크게 변하고 있다. 대구의 공간구조는 십자대로인 동대구로와 달구벌대로가 건설된 1980~1990년대, 또 도시철도 1, 2, 3호선, 그리고 외곽지에 들어선 대구국가산단과 대구혁신도시 건설 외에는 수십 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신산업 기업들이 대구국가산단과 첨단의료단지에 채워지고 민선 7기 외곽순환도로 등 대형 도로와 철도, 공항이전, 서대구역세권 개발 등이 본격 추진되면서 시민들은 60년 만의 큰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대구시는 올해 말 대구 외곽순환도로인 대구 4차순환도로(61.6㎞)를 완공한다. 서대구역과 성서산단, 대구국가산단을 연결하는 대구산업선(36.4㎞) 건설도 본격화한다. 경북 구미와 대구, 경산을 연결해 대구광역경제권을 촉진할 대구권광역철도(61.85㎞)도 2023년 말 개통된다.

수성구와 달성군 등 남쪽으로만 발전하던 대구의 발전축도 균형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오는 6월 고속철 서대구역이 완공돼 KTX 등이 운행되고, 14조원 규모의 서대구역세권 개발도 본격화한다. 수성구와 동구 북구를 잇는 도시철도 엑스코선도 지난해 말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된다. 안심연료단지의 뉴타운 건설과 함께 60여 년간 소음과 고도제한으로 대구발전을 가로막아 온 대구공항의 경북 군위·의성 이전은 대구를 크게 바꿀 대역사가 되고 있다. “오직 대구 위해” 野 시장과 與 부시장 뭉쳤다 60년 만에 찾아온 대구의 공간구조와 산업구조 혁신은 대구의 외형을 바꿔놓았지만 더 큰 변화는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야당 단체장과 여당 출신 재선의원 간의 협치다. 권 시장이 홍의락 부시장 영입을 제의한 것은 대구가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경제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후였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대구에 2명이던 여당 의원마저 모두 낙선했다. 권 시장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은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데 총선 이후 대구는 여권과의 통로가 완전히 끊긴 상황이었다”며 “대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잘 추진하기 위한 절박함 속에서 한 영입이었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정치적 계산을 한다면 오래 갈 수 없는 일이지만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오직 대구만 바라보고 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홍 부시장은 취임 이후 10개월 동안 기업 운영경험과 재선의원의 정치력을 발휘하며 민선 7기 후반 자칫 동력이 떨어질 시기에 새로운 추진력으로 대구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권 시장과 홍 부시장의 협치는 구체적인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홍 부시장 취임 이후 대구시는 대구도심융합특구 선정, 도시철도 엑스코선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경북대 캠퍼스 혁신파크조성사업 지정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따냈다. 대구의 미래를 바꿀 의미 있는 큰 프로젝트들이다.

지역정가에서는 연정이나 당 차원의 협치가 아닌, 개인 간의 협력으로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시민과 공무원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여야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협치의 성과를 대구의 큰 변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구의 한 민간연구원 관계자는 “대구는 2000년대 중반 한 중앙언론으로부터 ‘순환, 경쟁, 상호비판이 없는 동종교배의 도시’라는 뼈아픈 지적을 들었지만 야당 단체장과 여당 재선의원 출신 부단체장이 정파를 떠나 협력하고 혼신을 다하는 모습에서 대구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구의 경제는 체감할 정도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인당 GRDP는 여전히 전국 꼴찌다. 제조업의 임금수준도 최하위권이다. 송규호 대구기계부품연구원장은 “제조업 초임이 평균 ‘나이×100만원’, 판교는 ‘나이×120만원’이지만 대구는 ‘나이×80만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대구산업구조가 고부가 신산업으로의 전환이 촉진돼야 임금수준도 나아지고 대구의 청년 유출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희망적인 통계도 보인다. 대구지역 1인당 GRDP의 5년간(2014~2019) 평균 성장률은 3.83%로 울산의 0.71%, 경북의 1.64%보다 크게 높고, 전국평균 3.74%보다도 높다. 청년인구의 유출도 지역주도형 일자리 사업 등의 영향으로 유출규모가 2019년 1만2293명에서 지난해 7846명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 벽두 권 시장은 신산업혁신과 공간구조를 뒷받침할 ‘인재도시 대구’를 선언했다. 권 시장은 “그동안 혁신을 산업과 공간혁신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본 측면이 있다”며 “새로운 대구는 사람을 키우는 풍토와 분위기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현덕 경북대 교수는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뉴딜정책을 뜯어보면 대구가 7년 전부터 추진해온 신산업혁신과 궤를 같이한다”며 “신산업 분야에서 플랫폼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초과이익을 내면 이는 곧 인재에 대한 투자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들 인재가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