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의 심리로 읽는 세상] 패거리 '벌떼 심리'에서 '집단지능'으로

입력 2021-04-21 17:21
수정 2021-04-22 00:17
단체 활동을 하는 생물은 공통점이 있다. 개미나 꿀벌, 바다의 정어리떼나 호수의 쇠오리떼, 북극의 순록떼 움직임을 보면 집단 전체가 하나의 개체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개미나 꿀벌 등 사회성 곤충의 집단행동을 보면 각각의 지능을 다 합친 것보다 월등한 집단지능을 보인다. ‘집합적 유기체’의 능력이 개별적 개체 능력의 총합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1928년 미국 곤충학자 윌리엄 휠러는 이런 군집적 유기체를 ‘초유기체’라고 했다. 개별 개체에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집합적 상태의 초유기체가 되면서 갑자기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지능을 ‘떼 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고도 한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흰개미집이나 정교하게 지어진 벌집 등에 이런 떼 지능이 잘 나타나 있다. 초유기체 학자 베르트 횔도블러와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성 곤충은 이성을 사용하지 않아도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집단지능의 강력함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이런 집단적 행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잘못하면 ‘패거리주의’로 비화할 수 있다. 사라 캐버너가 ‘하이브 마인드 (hive mind·벌떼심리)’로 명명한 집단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특정 집단이나 조직에 소속할 때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 생각, 기분, 심지어 뇌 활동까지 동조화되는 경향이 일어나면서 나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런 집단주의적 속성과 개인주의적 속성 간의 갈등을 조율하며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자율성의 결여나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경우 집단주의적 속성이 지배하면서 개인의 차이를 희생하고 집단의 논리에 매몰된다. 동조화 경향이 강할수록 내집단의 결속력은 강화되나 그만큼 외집단에 대한 배척 역시 비례해서 강해진다. 구심력을 강하게 하면 할수록 원심력을 잃게 된다.

봄, 골프의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 동안 잠시 쉬었던 탓에 스코어가 잘 안 나오면 괜한 골프채나 골프공을 탓하게 된다. 골프공은 투피스부터 포피스까지 나뉘어 있다. 최근에는 파이브피스까지 나왔다고 한다. 골프공은 크게 내핵에 해당하는 코어 부분과 겉표면의 커버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만으로 구성된 것이 투피스 공이다. 코어와 커버 사이에 한 겹의 이너 커버를 넣으면 스리피스, 두 겹의 이너 커버를 넣으면 포피스가 된다. 이너 커버가 많을수록 비거리는 짧아지는 대신 회전수가 늘어 정확성이 향상된다. 비거리가 짧은 아마추어에겐 내핵만으로 구성된 투피스가 유리하다. 반면 정확성이 ‘돈’인 프로들은 대부분 내핵에다 이너피스를 겹겹이 둘러 외연을 확장한 포피스를 선호한다.

지난 몇 년간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보면서 골프공을 떠올리게 된다. 정치적 양극화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점점 그 간극이 커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정당 내부의 갈등 정도 역시 이에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벌떼 심리가 더 공고해지면서 약간의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즉, 동일한 소재로 구성된 투피스 공을 지향하는 성격이 더욱더 강해진 것이다. 이렇게 구심력만 지향하다 보니 원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샤이 보수’니 ‘샤이 진보’니 하지만 실제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키는 ‘샤이 중도’가 쥐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정치적 질곡을 겪으면서 이런 샤이 중도는 조금씩 그 영토를 확장해 가고 있다. 결국 누가 이들의 마음을 얻는가가 선거 결과의 향방을 좌우하는 것이다. 2016년의 20대 국회의원 선거와 이번 지자체 보궐선거에서 보듯이 벌떼 심리가 강력한 정당은 패배했다.

세계의 정치, 경제 지형은 코로나19로 인해 때 이른 세기말적 격변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팽창된 집단주의를 이제 승화시켜야 한다. 벌떼 심리가 아니라 초유기체적 집단지능으로 승화시켜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전환을 이루는 이들이 다음 선거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