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투자자 울리는 '투자자 보호'

입력 2021-04-20 17:56
수정 2021-04-21 00:19
암호화폐 시장에 투자 광풍이 불면서 정부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주장의 대부분은 “투자자 보호가 절실해졌으니 규제하라”는 것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19일 특별 단속대책을 내놨지만 “불법행위를 처벌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24시간 세계에서 수십조원이 거래되는 암호화폐 시장을 단속하기가 마땅치 않아서다. 자발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좇아 뛰어드는 투자자들을 막을 명분도, 방법도 별로 없다.

그나마 현실적인 투자자 보호 방안은 코인 상장요건 강화, 입출금 중단이나 서버 장애로 인한 손실에 거래소 배상 책임 의무화 등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조치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규제가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2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그리고 이달 15일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비트코인은 투기를 위한 수단”이라고 언급한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급락했다.

규제를 암시하는 당국자 발언이 투자자 손실을 불러온 셈이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미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변동성의 주범”이란 말까지 나온다. 지난 주말 시작된 비트코인 급락세도 “미 재무부가 암호화폐를 이용한 돈세탁 단속에 나선다”는 소문이 촉발했다.

암호화폐 규제가 장기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단기적으로는 어쨌든 투자자들에게 달갑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일은 다른 금융규제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달 시행에 들어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금융회사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불편 조장법’이 돼버린 게 대표적이다. 공매도 금지나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비중 확대의 경우 반대로 당장은 투자자들이 반길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유리할지는 의문이다.

‘투자자 보호’를 앞세운 정부 개입에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정부는 뭐 하고 있냐”고 따진다. 스무 번이 넘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물론 자금세탁, 사기 등 기존 법 테두리에서도 위법인 사항은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 다만 시장이 과열됐다고 무조건 규제하라는 식은 곤란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도 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