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초당적 의회 산하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넘어 시민적·정치적 국제규약(ICCPR) 위반”이라는 강한 비판이 나왔다.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미 의회의 부정적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이 다음달 하순 열릴 첫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향후 한·미 관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인권법 고려해 법안 수정해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제임스 맥거번 미 민주당 하원의원은 15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청문회에서 “국제 인권법은 표현의 자유를 안보 이슈로 제한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가이드를 제공한다”며 “한국 국회의원들이 국제인권법의 가이드를 고려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국회가 직접 나서 법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30일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에 전단뿐 아니라 일체의 물품을 보내면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이다. 행위가 미수에 그쳐도 처벌할 수 있다. 한국계 영 김 의원(공화당)은 “북한 주민들에게 대북 전단은 정권으로부터 잘못 전달된 정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이 법은 모호한 언어로 돼 있어 불분명하고 법을 어길 시 너무 과한 처벌을 부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의 인권에 눈을 감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서 체포돼 구금된 탈북민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이들은 중국인 인신매매범으로부터 도망쳤지만 구금 중 다시 넘겨졌다”고 지적했다.
청문회에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됐다. 증인으로 참석한 북한 전문가 고든 창 변호사는 “한국에서 자유는 물론 민주주의 개념까지 공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의원은 “북한이 지난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할 당시 독재자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자, 문 대통령의 소속 정당 의원들이 곧바로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썩었다’는 신지욱 스탠퍼드대 교수의 말처럼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한·미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北 인권 정책정부와 여당은 이번 청문회 개최 이전부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스미스 의원이 처음 청문회 개최를 예고하자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청문회가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에 맞춰 열린 것과 관련해 “의도가 불순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반발을 의식한 듯 스미스 의원은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4·7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로 일정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북한과 중국의 인권 문제에만 유독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인권을 대외 정책의 ‘핵심’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의중이 청문회에 담겼다는 분석도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한국은 독립적이고 강력한 사법부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이 법을 재검토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국내 인권단체들이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동맹을 강조하던 한·미 양국이 ‘내정 간섭’과 ‘인권 침해’라고 날선 비판을 주고받으면서 양국 관계가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인권이 의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공개 발언이 아니더라도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첫 번째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인권을 두고 미국과의 관계까지 틀어질 경우 한국은 외교적 고립무원 상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