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겨울산에 가면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내면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비범하게 생긴 넓은 이마와
도타운 귀, 그 위로 오르는 외길이 보인다
그새 쌓인 눈을 다시 쓸어내리면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이 있고
신열에 들뜬 입술 위로
물처럼 맑아진 눈물이 흐른다
잘릴 때 쏟은 톱밥가루는 지금도
마른 껍질 속에 흩어져
해산한 여인의 땀으로 맺혀 빛나고,
그 옆으로는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꺾으면 문드러질 만큼 어린것들이
뿌리박힌 곳에서 자라고 있다
도끼로 찍히고
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
고요히 남아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나이테가 있다.
- 나희덕, 「겨울산에 가면」-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이마와/도타운 귀…/… 손등…/신열에 들뜬 입술 …/… 눈물…/해산한 여인의 땀…/ 어머니사물에도 영혼, 정신, 의식, 마음이 있을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고, 없다고 생각하면 데카르트주의자이다. 시인은 아무래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여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만 가슴 속에 있는 마음이 움직일 테니까….
데카르트주의자에게 ‘나는 나이테를 본다’는 가능해도, ‘나이테가 나를 본다’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정신, 의식을 지닌 존재, 즉 주체이고, 그 외의 것들은 정신, 의식이 없어 객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에서 ‘나이테가 나를 본다’는 것은 주체인 ‘나’를 객체로, 객체인 ‘나이테’를 주체로 놓은 주객전도의 표현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나이테라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화, 즉 의인법이라는 것이다. 나이테가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장치는 이후에도 곳곳에 나온다. 나이테가 ‘이마’, ‘귀’, ‘손등’, ‘신열에 들뜬 입술’, ‘눈물’ 등등을 지닌 것을 보면 나이테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나이테는 ‘어머니’로 인식된다. 나이테와 관련한 현상인 ‘잘릴 때 쏟은 톱밥가루’가 ‘해산한 여인의 땀’으로 비유되고, 나이테에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꺾으면 문드러질 만큼 어린것들이/뿌리박’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표현이, 어머니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이해하면 ‘나이테가 나를 본다’는 것은 결국 ‘어머니가 나를 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결국 시적 화자는 ‘나이테’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신열에 들뜬 입술 … /물처럼 맑아진 눈물…/…/도끼로 찍히고/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신열에 들뜬’, ‘눈물’ 등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생각해 보자. 이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생, 시련, 근심 속에 살았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와 함께 그 사람이 ‘도끼로 찍히고’, ‘베이고’, ‘눈 속에 묻’혔다고 생각해 보자. 뭔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그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이 시어들은 ‘나이테’, 즉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어머니’는 엄청난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어머니만 그런 것 같지 않다. ‘나’ 또한 ‘눈을 맞으며 산에 들’고 있는데, 이는 ‘눈’이라는 시련과 고통 속에 ‘나’가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이제 왜 ‘나’가 나이테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머니를 연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 옛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을 지키며 살았던 어머니가 떠올랐던 것이고,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나’는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곧 ‘나’ 또한 어머니처럼 살겠다는 의미도 된다.
이렇게 시어가 주는 느낌을 떠올리면서 시를 감상하며 감추어진 의미를 생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 보자. 겨울산에 가면 /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내면 /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 나이테가 있다.반복은 시를 시답게 하는 방법이다. 운율감을 형성하는 한편, 시적 의미를 강조하는 데 반복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반복의 부작용은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말을 계속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하품이 저도 모르게 나올 것이다. 그래서 변화를 준다. 똑같은데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시에서 흔히 쓰는 반복 중에 하나가 수미상관이다. 이것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상관되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시의 처음과 끝에 같은 구절을 반복하여 배치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구절들이 꼭 같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반복과 변화의 장단점을 적절히 활용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작품의 1~4행과 21~23행을 연관 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겨울산에 가면’과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와 ‘나를 바라보는/나이테가 있다’는 의미상 같은 말이다. 특히 ‘산’, ‘나이테’는 반복이 되고, ‘겨울’과 ‘눈’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 이는 시적 공간인 ‘겨울산’과 시적 대상인 ‘나이테’를 부각하는 효과가 있다. 결국 이 작품을 감상할 때 ‘겨울산’과 ‘나이테’의 시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깨닫는다면 시 감상 능력이 있다고 하겠다. ☞ 포인트
① 주체와 객체를 바꾸는 주객전도의 표현이 무엇인지 알아 두자.
②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화, 즉 의인법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아 두자.
③ 시어가 주는 느낌을 떠올리면서 시를 감상하며 감추어진 의미를 생각하는 연습을 하자.
④ 반복과 변화의 장단점을 적절히 활용하며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미상관에 대해 알아 두자.
⑤ 시에서 시적 공간과 시적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