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른 코로나19 백신 공급과 대규모 부양책 덕분에 미국 경제가 조기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대형 은행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올 1분기에 나란히 역대 최대 ‘깜짝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는 1분기에 143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14일(현지시간)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8억7000만달러)보다 5배 늘어난 것으로 이 은행 역사상 최대치다.
1분기 매출은 323억달러로 1년 전보다 14% 증가했다. 주당순이익(EPS)은 4.50달러였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10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이번 실적 호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건 대손충당금 환입(52억달러)이었다. 부실채권이 크게 줄어들면서 종전에 적립해둔 충당금을 이익금으로 돌릴 수 있게 돼서다. 이 은행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발생에 따라 작년 1분기에만 68억달러를 추가 충당금으로 적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JP모간을 포함한 미국 주요 은행의 충당금 적립액은 작년 말 기준 2366억달러로 1년 전보다 2배가량 급증했다. 경기 호조 덕에 올해 은행권이 고루 혜택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투자금융 매출이 확대된 것도 JP모간의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줬다. 이 부문의 1분기 매출은 29억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3.2배 뛰었다.
월가의 또 다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역시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1분기 순이익이 68억4000만달러로 작년 동기(12억1000만달러) 대비 5.7배 증가했다. 매출은 작년 1분기의 두 배가 넘는 177억달러를 거뒀다. EPS는 18.60달러를 기록했다. 팩트셋 전망치(10.22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주식 등 상품 거래(트레이딩) 매출이 75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47% 늘었다. 게임스톱 등 일부 종목 거래가 활발했던 덕분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투자 열풍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의 1분기 투자금융 순이익은 사상 최대인 37억7000만달러였다. 수년간 소매금융이 은행권 수익을 이끌었지만 팬데믹을 기점으로 투자금융이 주도권을 넘겨받았다는 의미라고 CNBC는 설명했다.
웰스파고의 순이익은 7배 넘게 늘었다. 작년 1분기 6억5000만달러에 그친 순이익은 올해 47억4000만달러로 뛰었다. EPS는 1.05달러로 팩트셋 전망(0.71달러)을 웃돌았다.
예대마진 위주의 소비자금융 매출이 22억달러로 1년 전보다 12% 감소했지만 투자금융 부문이 상쇄하고도 남았다. 투자금융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7% 늘어난 36억달러를 기록했다. 자산관리 매출도 8% 증가한 35억달러에 달했다.
대형 은행들이 최대 실적을 내놨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선 엇갈린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화상으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강력한 재정 부양정책에 따라 미국 경제가 수년간 성장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고 이를 갚아나갈 능력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저축액이 넉넉한 소비자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은행 수익이 줄어들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상위 25개 은행의 최근 대출 잔액은 작년보다 8%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웰스파고만 해도 올 1분기의 매출 대비 이자수익 비중은 2012년 이후 최저치다.
에릭 해지만 제나인베스트먼트 수석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관건은 대출 증가율”이라며 “은행들의 기본 수익원인 대출이 늘어나야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