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경기회복 예상 시점이 내년 이후로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고용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대출만 급증하면서 중소 제조업체의 체력이 고갈되고 있다. 경제 위기때마다 회복의 엔진 역할을 해온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15일 중기연과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 개최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중소제조업 활성화 방안'세미나에서 "중소 제조업체들이 통계로 드러난 수치보다 더 안좋은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기저효과로 통계는 좋아 보이지만…中企제조업 심각한 수준"
통계청에 따르면 사업부진과 조업중단에 따른 중소 제조업 일시 휴직자는 작년 6만8000명으로 최근 3년간 81%증가했다. 또 중소 제조업 취업자수도 최근 3년간 4.9%(18만1000명) 감소했고, 전체 제조업 취업자중 중소기업 비중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특히 중소 제조업의 여성 취업자수는 최근 3년간 11만7000명 감소해 그 감소폭이 같은 기간 남성 취업자 감소폭(6만4000명)의 두 배에 육박했다. 노 단장은 "통계상 취업자로 잡혀있는 일시휴직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고용의 안전판 역할을 해온 중소 제조업체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중소제조업의 고령화와 외국인근로자 의존도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노 단장은 분석했다. 중소제조업의 39세 이하 청년 취업자수는 최근 3년간 11.2%(13만9000명) 감소했다. 주52시간 근무제 여파로 중소 제조업의 근로시간은 최근 3년간 8.5시간(4.7%) 감소했으며, 창업기업 중 제조업 비중도 기존 4.6%에서 3.4%로 떨어졌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중소 제조업체의 생산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출만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소 제조업체의 생산은 전년대비 4.3%감소했고, 가동률은 68.7%로 전년대비 4.6%포인트 떨어져 60%대로 주저 앉았다. 노 단장은 "공장 가동률이 수년전 70%대로 떨어진 충격도 큰 데, 다시 60%대로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휴·폐업이 급증하면서 전국 산업단지 공장 처분 건수는 지난해 1773건으로 전년대비 19.5%(289건)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잔액은 2019년 716조원에서 지난해 804조원으로 88조원 가량 증가했다. 올들어 현재까지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잔액은 900조원으로 늘어 매월 8조원 가까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중소 제조업 자금사정 경기실사지수(BSI)는 현재 60%대까지 내려간 상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기 회복 예상 시점도 점차 미뤄지고 있다. 중기연의 작년 5월 설문 조사에선 경기회복 시점이 '2021년 상반기'라는 응답이 30%였지만 작년 12월 조사에선 4.6%에 불과했다. 반면 '내년(2022년)'일것이란 응답은 8.9%에서 23.9%로 늘었다. 당분간 회복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33%에 달했다.
노 단장은 "작년 코로나 사태로 경기 충격이 왔을 때와 비교해볼때 올해는 '기저효과'로 통계 수치가 좋아 보일 수도 있다"면서도 "중소 제조업체의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고,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충격이 닥칠땐 한꺼번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소 제조업에 대해 고용 등 정책적인 목적을 달성했다면 정부가 기존 대출을 보조금 형태로 전환해주는 정책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중소 생산성 격차 스웨덴의 3배…정부 정책 '선택과 집중'필요이날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중소 제조업의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제조 혁신 가속화 △구조조정 △인력 수급 미스매칭(불일치) 해결 △정책의 선택적 집중 등을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생산성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중 가장 높은 70%에 달해 20%수준인 스웨덴보다 크게 낙후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지식의 재조합 역량 역시 한국의 중소기업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스마트 공장 보급와 연구·개발(R&D) 활성화 등이 필요하지만 R&D의 경우 '산학연 R&D'는 줄고, '단독R&D'만 늘어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옥석가리기'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한수 경기대 교수는 "4차산업 혁명시대에 '육성할 사업'과 '퇴로를 확보해야할 사업'을 구별해야한다"고 했다. 안준모 교수 역시 "기업 생태계란 태어나는 것(창업)과 죽는 것(폐업)을 포함한다"며 "기업이 편하게 퇴출될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임채운 서강대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산업단지, 지방 등에 가지 않으려는 인력 수급 미스매칭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벤처기업부가 벤처, 소상공인 등에만 정책을 집중하지 말고, 중소 제조업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김한수 교수는 "정부의 정책이 너무 많은 기업과 많은 사람들에게 맞추려다보니 선택과 집중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안준모 교수도 "다수를 위한 소액지원은 정책적 효과가 거의 없다"며 "'빅푸쉬(Big Push)'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채운 교수 역시 "중소기업 정책이 산업별, 규모별로 세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고성장 중소기업와 저성장 중소기업으로 그룹을 나눠서 차별화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형덕 중기중앙회 제조혁신실장은 중소기업의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불합리한 전기요금을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강형덕 실장은 "중소제조업이 주로사용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료는 주택용에 비해 생산원가가 낮음에도 전기요금은 높게 부과되고 있다"며 "일부 뿌리기업은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원가에서 12.2%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