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영상 통화하듯 쇼핑할 수 있는 앱이 있다. 판매자는 실시간 1인 방송을 하며 제품을 소개하고, 시청자들은 이것저것 물어본다. 영상 내에서 클릭 몇 번으로 배송을 신청할 수 있다. 판매자와 시청자는 제품과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도 한다. 라이브커머스 앱 ‘그립(대표 김한나·사진)’이다.
라이브커머스는 대중에게 이미 친숙하다.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사업이다. 이 분야 시초가 그립이다. 그립은 2019년 초 국내 최초로 라이브커머스 서비스를 출시했다. 김한나 대표는“친구와 영상통화하듯 물건을 거래한다면 더 잘 팔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립은 49명의 판매자를 규합해 플랫폼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립이 직접 ‘대박’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사업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연예인 유상무를 섭외해 만든 ‘랜덤박스 판매 방송’이 주인공이다. 랜덤박스 100개 중 2개는 고가의 에어팟이 들어 있었고, 나머지 98개는 유상무 사인 벽돌이 들어 있는 식이다.
콘텐츠가 재밌어 이용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그립에 등록된 판매자 수는 1만559개사, 누적 거래액은 240억원(작년 12월 기준)이다. 김 대표는 “플랫폼 운영자는 단순히 인프라를 지원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고 트래픽 물꼬를 터주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며 “지금도 콘텐츠 개발팀을 운영하며 플랫폼 곳곳에 그립이 제작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도 성장하는 그립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2019년 7월 그립이 시리즈A 투자 라운드를 준비할 때 그립에 러브콜을 보냈던 투자사 40여 곳 중 세 곳만 선택해 35억원을 유치했다. 지난해 그립이 시리즈B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다수 투자사가 제안했지만 기존 세 곳에서만 8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았다.
그립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지난해 네이버 카카오가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각자 검색 플랫폼 ‘네이버’와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톡’을 보유하고 있다. 그립은 플랫폼 차별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그립 플랫폼 내에서 이용자와 그리퍼들이 노는 문화가 생겼고, 이를 가꾸고 고도화하는 그립 운영진의 노하우가 쌓였다”며 “이는 그립만의 ‘커뮤니티 감성’이고, 이는 쉽게 카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립은 이런 문화와 감성을 지키기 위해 ‘경매 기능’ ‘주사위 던지기’ ‘퀴즈 게임’ 등 이용자와 그리퍼들이 놀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특허로 등록해 놓기도 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그립은 국적에 상관없이 판매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보더리스 라이브 플랫폼’을 꿈꾼다. 인공지능(AI)으로 자연어 인식, 통번역 등 기술적 작업만 거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내 판매자들이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영어 버전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판매가 실제 일어나는 시점에 미국 지사를 세울 계획이다. 김 대표는 “라이브커머스가 K콘텐츠의 한 축을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