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 9일 ‘원포인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국내 주식 투자 허용한도를 조정한 배경을 둘러싸고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정가와 증권업계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여론을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12일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을 바꾸는(리밸런싱) 방안은 작년 말부터 청와대를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코스피지수가 급등세를 보였는데,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낮은 코스닥시장도 국민연금 등이 들어가서 부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거론됐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다른 연기금 역시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논의됐다.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국내 주식 투자 비중 상단을 올려서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도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포트폴리오 조정 계획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등에서도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아예 국내 주식 비중을 15%까지 낮추기로 하는 내용의 국민연금의 ‘중기자산배분’ 전략부터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중기자산배분안의 비중 자체를 바꾸기 어려우면 아예 뒤로 미루자는 말까지 언급됐다. 결국 증시 부양에 연기금을 동원하자는 얘기였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이런 논의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절차상 문제 제기를 무릅쓰고 이번 ‘원포인트 규정 변경’을 강행한 배경을 두고 이 같은 정치권 개입설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지난 4월 국내 주식 비중 확대안이 기금운용위원회 안건으로 포함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복지부는 즉각 “계획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바로 다음날 논의가 이뤄졌다. 이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조정안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직후인 9일 단일 안건만 논의하는 이례적인 기금위를 통해 결국 통과됐다.
그동안 기금위 독립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기금위 참석을 자제해온 기획재정부 차관 등 정부 측 인사들이 지난달에 이어 이번 기금위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 측 고위 관계자가 회의 시작 직전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에게 “파이팅”이라고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안건을 통과시키는 게 청와대의 ‘희망사항’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준호/황정환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