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야기] (6) 국민연금 국내주식 매도 논란에 대한 3가지 의문 (上)

입력 2021-04-12 10:12
수정 2021-04-12 10:54
≪이 기사는 04월09일(15:5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국내 주식 매도를 중단하는 방안을 정부가 재추진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이 다시 일고 있다. 지난달 말 정부가 상당한 의욕을 갖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논의에 부쳤지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매표(買票)'논란이 불거지면서 미뤄진 논의다.

이 안은 올해 국내 주식 비중 목표인 16.8%는 그대로 두고 총 허용 한도 ±5% 안에서 문제가 되는 전략적 자산 배분(SAA) 허용 범위를 현재 ±2%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늘리는 내용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현재 14.8~18.8%인 국내 주식 SAA 허용 범위는 13.8~19.8%로 넓어진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지난달 말 기준 19.1%다. 현재 허용 범위에 맞추려면 주식 비중을 더 줄여야 하지만 허용 범위가 변경되면 매도할 필요가 없어지고 추가 매수도 가능해진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국민연금 안팎에선 사실상 안건 통과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들어 16조원 가량의 국내주식을 순매도하는 가운데 문제가 되는 투자허용한도를 넓혀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정부의 호소에 동감하는 위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총 투자허용한도를 넘지 않았는데 왜?

하지만 이 논의에서 몇 가지의 의문점이 남는다. 첫 의문점은 TAA가 가진 의미다. 앞서 언급한대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총 허용 한도는 ±5%다. 구체적으로 이 범위는 SAA 허용한도 ±2%포인트와 TAA ±3%포인트로 나뉘어지는데, 쉽게 생각하면 SAA는 기금 전체 포트폴리오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세워진 중장기 포트폴리오 구성비이고, TAA는 운용 실무를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 운용역들의 재량에 맡겨진 한도 수치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국내 증시가 정점을 찍은 작년 말과 올해초 기준으로도 국민연금은 주식을 팔 필요가 없었다. 국내 증시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도 TAA까지 포함한 총 허용한도(작년 말 기준 21.2%)에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모든 논의는 TAA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운용역들이 SAA 한도만 넘어도 '기계적' 매도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뤄지고 있다. SAA를 넓혀서 현재 비중을 SAA한도 아래로 내려야 운용역들이 매도를 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규정 상 SAA한도를 넘을 경우 운용역들이 기금위에 그 사유 등을 보고하도록 돼있긴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이 두려워서 매도를 할 수 밖에 없는 걸까.

국민연금이 SAA와 TAA 개념을 도입한 2010년 이전까지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투자 허용한도는 지금과 같은 ±5%포인트였다. 그 전까지 국민연금은 ±5%포인트를 기준으로 기계적 매도와 매수로 인한 문제를 논의했다. 언제부터 그 기준이 SAA가 된 것일까. TAA는 이 모든 논의에서 왜 제외되는 건지, 정말 SAA가 낮아서 생기는 문제인지, 현재도 ±5%포인트 범위 하에서 충분히 운용이 가능함에도 운용역들이 책임을 회피하게 되는 시스템이 문제인지 의문이 생긴다.


◆호황기에 덜 판다면 불황기엔 덜 사는 것 아닐까

두 번째 의문은 반대의 상황에선 어떻게 되는지다. 정부는 현재 국내 증시가 오름세라 국민연금이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팔아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금융 위기로 국내 증시가 폭락해 국내주식이 국민연금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생각해보면 14.8%였던 국내주식 SAA 허용한도가 13.8%로 떨어진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가 폭락할 때마다 우량주 중심 저가매수에 나서 하락기 증시 '도우미'로 여겨져왔다. 상승기에 기계적으로 팔았던 것을 막았다면 하락기에 기계적으로 샀던 것도 막히는 걸까.

실제로 국민연금은 2007~2008년 국내주식 시장에서 역대급 변동성을 보인 바 있다. 2007년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부문에서 39.25%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거뒀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코스피 대형주의 폭등 덕분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이듬해 국민연금은 국내주식에서만 -(마이너스)38.13%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국내 주식 비중은 1년만에 15.1%에서 12.2%로 크게 떨어졌다. 당시 국내주식 목표비중은 전체 자산의 17%. 허용한도에 0.2%포인트까지 접근하자 2009년 3월 국민연금은 기금위를 열어 일시적으로 국내주식 투자 허용한도를 ±5%포인트에서 ±7%포인트로 높인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안하므로 목표비중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 결정의 이유다. 그 때와 지금의 주식시장은 무엇이 다를까.

첫 질문에서 언급했듯 TAA가 의미가 크게 없다고 보면, 현재의 규정과 실무 하에서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급 충격이 한국 시장을 덮친다면 국민연금이 기계적 매수를 해야하지만 바뀐 기준으론 특별히 매수할 필요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꿔말해 호황기에는 매도를 덜 하고 불황기에는 매수를 덜하게 하는 변화라고 보면 될까.


◆기재부 차관은 기금위에 왜 왔을까

마지막 질문은 '정부가 왜 그랬을까'다. 정부가 소위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에 못 이겨 국내주식 보유 허용한도 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리밸런싱'을 갖고 나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목할 것을 지난 달 26일 2021년 제2차 기금운용위원회를 앞두고 국민연금 안팎에서 벌어진 일들과 해당 안건이 보류된 뒤 정부의 행보다.

정부는 지난 달 26일 기금위에서 해당 안건이 보류된 지 2주만에 기금위를 열기로 했다. 통상 월말 열리는 정기 기금위와 별도로 리밸런싱 안건 통과만을 위해 열리는 '원포인트' 기금위다. 흥미로운 사실은 통상 기금위 개최 소식을 사전에 알리던 정부는 이번엔 일정을 알리지 않다 본지 보도에 뒤늦게 개최 소식을 알렸다.

지난 기금위엔 평소 기금위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회의에 참가를 하지 않던 기획재정부 차관 등 정부 측 위원들도 참여해 목소리를 높였다. 기금위의 역사를 훓어보면 기금위는 기재부 차관이 참석한 기금위와 참석하지 않은 기금위로 나뉜다. 과거 기재부 차관은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의 원칙) 도입, 2019년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도입 등 굵직한 안건이 있을 때만 얼굴을 비췄다.

정말 정부는 현 시점을 국내 증시가 '퀀텀 점프'할 '모멘텀'이 있는 시기로 보고, 국민연금이 오랜 규정 때문에 매도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토록 서두르는걸까. 이 안건이 스튜어드십코드만큼의 중요도가 있다고 보는 걸까.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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