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을 걸 수 있는 권한은 여성에게만 있다. 거주지, 나이 등을 고려해 어울릴 만한 이성을 추천해준다. 사진을 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왼쪽으로,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넘긴다. 느낌이 오는 상대에게 ‘좋아요’를 누른 뒤 상대도 24시간 안에 반응하면 서로 ‘연결’된다. 세계 1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데이팅 앱 ‘범블(bumble)’ 얘기다.
범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휘트니 울프 허드는 범블을 ‘페미니스트 앱’이라고 소개한다. 짓궂은 남성이 많은 기존 데이팅 앱과 달리 여성 회원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앱 환경을 꾸몄다. 동성 간 대화를 제외하곤 첫 대화를 여성만 시작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범블은 가입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 안에서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어서다.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
범블은 지난 2월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인 2월 11일 범블 주가는 공모가 43달러보다 63.5% 급등한 70.31달러로 마감했다. 범블 주식 2154만 주를 보유한 울프 허드의 주식 평가액은 15억1000만달러(약 1조6700억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범블 주가는 이후 다소 하락했다가 최근 60~70달러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울프 허드의 재산이 여전히 1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뜻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울프 허드는 재산을 물려받지 않고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10억달러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며 “뉴욕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여성 CEO 중 가장 어린 나이”라고 설명했다. 울프 허드는 1989년 7월생으로 만 31세다.
울프 허드는 ‘틴더 공동 창업자’로도 알려져 있다. 틴더는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뒤 가입자를 3억 명 이상으로 늘린 세계 최대 데이팅 앱이다. 울프 허드는 틴더에서 2014년까지 마케팅 부문 부사장을 지냈다.
그가 틴더를 떠난 건 또 다른 공동 창업자 저스틴 마틴과의 불화 탓이었다. 울프 허드는 틴더에서 2년간 일하며 회사의 성장을 주도했지만 당시 최고마케팅책임자(CMO)였던 마틴이 그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쏟아붓자 참을 수 없었다.
울프 허드는 “마틴이 여성 사진은 회사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한다고 비아냥댔다”며 “마틴으로부터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후 소송을 제기한 울프 허드는 합의금을 받고 마틴이 회사를 떠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도 틴더를 떠났다. 데이팅 앱은 ‘여성이 핵심’성추행 스캔들을 겪으면서 울프 허드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불신에 빠져 관련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팅 앱 ‘바두’를 운영하던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CEO가 그에게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안했다. 울프 허드는 안드레예프를 틴더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안드레예프는 기존 서비스와 다른 데이팅 앱을 개발해보자며 울프 허드를 설득했다. 이후 두 사람은 여성 중심의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성공을 자신한 두 사람은 2014년 12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범블을 창업했다.
울프 허드는 틴더에서의 경험을 통해 데이팅 앱의 핵심은 ‘여성’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데이팅 앱에 여성이 없으면 남성이 존재하지 않고, 결국 비즈니스도 실패한다는 생각이었다.
범블은 여성층을 공략하며 빠르게 규모를 키워나갔다. 범블의 성장세에 틴더를 소유한 매치그룹이 2017년 범블을 4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일화도 유명하다. 울프 허드는 자신이 떠난 회사의 인수 제안을 곧바로 거절했다.
범블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18년 3억6000만달러, 2019년 4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1~3분기 매출은 4억1660만달러 수준이다.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2년 전만 해도 10억달러 수준이던 범블의 가치는 70억달러까지 늘었다.
울프 허드는 성공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최근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이에 아이디어를 적어 욕실 거울에 올려놓고 2주 동안 바라보세요. 변화는 이런 것에서 비롯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여성이 일을 하면서 좌절하고 두려움에 가득 찼습니다. 조용히 있으라는 말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무언가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