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3000선을 위협하던 코스피지수가 슬금슬금 오르더니 3100을 다시 넘어섰다. 상승 흐름을 이끈 다양한 요인 중 외국인의 귀환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지난달 26일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증시에서 매수세로 돌아선 외국인은 이달 8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2조80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은 지난 9일 다시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많은 전문가는 귀환이라는 큰 흐름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으로, 그중에서도 한국 등으로 들어오는 신호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연고점을 찍고 내려왔고,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안정을 찾는 등 거시경제 여건도 증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 상향 움직임 등도 맞물려 지수 상승 기대를 키우고 있다.
외국인, 반도체주 집중 매수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8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보이며 2조348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작년 11월 5~24일 이후 5개월 만에 나온 최장 연속 순매수 기록이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유의미한 매수세를 보인 것은 지난달 26일부터다.
외국인 매수는 반도체 업종에 집중됐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수 상위 1·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다. 삼성전자를 1조328억원어치, SK하이닉스를 5454억원어치 순매수했다. 2분기부터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예상되는 데다 삼성전자가 1분기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소폭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것이 매수세를 끌어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업종은 지난달부터 이미 서버용 반도체 고정거래가격이 올랐고, PC용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강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공급 부족으로 2분기 서버용 D램 가격이 1분기 대비 20% 이상 오를 것”이라며 “3분기 말까지는 많은 수요가 예상된다”고 했다. 실적 기대 높은 업종에 몰린 돈반도체 대장주 ‘투톱’에 이어 외국인 순매수 3~5위는 카카오(3535억원), 셀트리온(2342억원), SK텔레콤(2333억원) 등이었다. 이어 엔씨소프트, 한국조선해양, KB금융, 신한지주, 포스코 등도 외국인이 많이 산 종목 10위권에 올랐다.
외국인 매수 상위 종목은 반도체 외에는 주로 통신서비스, 유통, 소프트웨어 업종에 포진해 있다. 김성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들 업종은 모두 최근 들어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이 상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1분기뿐 아니라 올해 실적 전망치가 계속 상향 조정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기대치가 커져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7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영향으로 건설·건축자재 관련주도 이달 외국인의 매수 강도가 셌다. 최근 한 달 평균 거래대금 대비 4월 외국인 누적 순매수 강도를 보면 DL이앤씨, 아이에스동서, 현대건설 등 건설 관련주가 ‘톱10’에 들었다. 美 국채 금리 상승·强달러 주춤외국인 자금 유입 배경에는 거시경제 여건 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1.7% 수준에서 일단 안정을 찾으면서 그동안 금리 상승 피해주로 여겨지던 대형 기술주 등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
달러 강세도 주춤해져 외국인에게 국내 주식의 매력도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 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지난달 말 연고점을 찍고 1% 이상 내려왔다. 다만 달러에 대해선 당분간 추세적으로 강세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긴 하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미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강한 성장세 등으로 단기적으로 강달러가 예상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 흐름은 신흥국 전체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외국인 자금 유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요소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 정상화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국내 증시에도 긍정적이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엔 호재로 작용한다. 지난달 한국 수출 역시 반도체 업종 등의 강한 회복세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주요 투자은행과 기관에선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대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 수요 비중이 높은 반도체, 자동차 업종의 실적이 탄력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