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엉터리 논공행상' [여의도 돋보기]

입력 2021-04-10 10:00
수정 2021-04-11 05:51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내부에선 유독 “자만은 금물”이라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야당이 잘해서 승리한 게 아니라 여당이 못해서 매를 맞았다는 해석이 우세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당 지도부의 본심은 과연 그럴까요? 이번 선거를 수 개월여 간 지켜본 기자는 아닌듯 합니다.

‘신상필벌, 논공행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와 조직 운영의 기본입니다. 여당 지도부가 선거에 참패한 다음 날 곧바로 전원 사퇴를 결정한 이유입니다. 당 내부에선 책임 소재를 따지느라 ‘시끌벅적’합니다. “참패 책임이 있는 분들, 당내 선거 나오지 말라”(조응천 의원)는 말이 뼈를 때립니다. 이런 소란들을 국민들은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는 걸 여당 의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야당은 어떤가요. 흥미롭게도 이번 선거의 ‘최대 공신’이라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예전 약속대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에선 꽃다발을 주고 손뼉을 치는 사진을 공개하더군요. 누군가는 공개적으로 “내년 대선까지는 도와달라”고 할 법도 한데, 그런 얘기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석 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볼까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때 이른 서울시장 출마 선언으로 국민의힘 내부에선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안 대표의 서울시장 지지율이 30% 안팎을 넘나들던 시기입니다. 내로라하는 야당의 중량급 정치인들이 안 후보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끌어와야 한다며 김 위원장을 흔들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먼저 선출한 후 야권 통합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김종인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선 “몽니나 심술을 부리지 마시고 판세가 흘러가는 대로 따르라”(홍준표 의원)는 날 선 비판들이 나왔습니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 내부를 ‘콩가루 집안’이라는 격한 발언으로 질타할 정도였습니다.

만약 오 후보가 아닌 안 대표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됐으면 어땠을까요. 당 내부에서 수도 서울의 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후폭풍’이 거셌을 겁니다. 당 밖의 안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제3지대’가 탄력을 받으면서 국민의힘은 사분오열됐을 게 뻔합니다. 당시 안 대표를 지지했던 당 안팎의 인사들을 탓하자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의 판단 착오, 해당 행위에 대해선 사후적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치는 공익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안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선 국민에게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선거 직후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정치권의 구태와 결별하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실제 성명서를 읽어 보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결기가 없습니다. 그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전체 56명의 초선 중 발언권을 신청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초선인데 산전수전을 겪은 ‘5·6선’ 다선 의원처럼 눈치를 봅니다. 그런 식으로 바꿀 수 있는 현실 정치는 없습니다.

본인을 희생하고, 남보다 조금 더 손해를 봐야 타인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게 현실 정치입니다. 혹여나 자리가 없어질까 눈치를 보거나, 침묵하는 정치인은 중용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다수의 정치인이 모인 정당을 과연 국민들이 지지해 줄지도 의문입니다.

당장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부터 단호하게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당 안팎에선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당헌·당규를 손보는 현직 지도부가 차기 당 지도부에 욕심을 낸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런 의구심이 퍼진 상황에선 공정한 선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해타산 대신 정권교체를 향한 염원들이 모여야 정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