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 있는 4932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의 ‘택배대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지난 1일부터 단지 안에 택배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자 택배기사들이 “입구까지만 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서울 상일동역에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덕동 아파트 측에서 택배차량이 지상으로 출입할 수 없다고 택배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이 아파트를 ‘개인별 배송 불가’ 아파트로 지정하고 14일부터 택배를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아파트 관리지원센터는 “단지가 ‘차 없는 아파트’로 설계돼 차량 진입을 금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택배차량이 지상으로 들어올 경우 사고가 날 수 있고, 보도블록도 훼손된다”는 게 관리지원센터의 입장이다. 관리지원센터 측은 “택배기사들이 입구에서 내려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탑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해당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제한 높이는 2.3m로, 일반 택배차는 들어갈 수 없다.
택배노조 측은 “저탑차로 바꿔도 택배기사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일반 택배차는 화물실 높이가 180㎝로 허리를 펴고 작업할 수 있지만, 저탑차는 높이가 127㎝ 수준이다. 물건을 싣고 내리기 위해선 허리를 구부린 채 일해야 한다. 한진택배 기사인 김진일 씨는 “허리도 못 펴고 물건을 싣고, 정리하고, 내려야 한다”며 “서서도 감당하기 힘든 감자·옥수수·절임배추를 어떻게 저탑차로 실어나르느냐”고 토로했다.
주민 입장은 엇갈린다.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키운다”는 주민 A씨는 “얼마 전에도 후진하던 택배차에 떠밀려 아이 한 명이 넘어졌다던데 불안하다”고 말했다. 반면 “택배차의 지상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민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B씨는 “아이 안전 문제가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도 단지 내에 차가 아예 안 다니는 게 아니다”며 “집 문 앞까지 택배를 받으려면 지상에 택배차량을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도 택배차량 진입 금지로 택배대란이 벌어졌다. 국토교통부는 이 일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자 2019년 1월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대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높일 것을 의무화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덕동 아파트는 2016년부터 건설해 바뀐 규칙을 적용받지 않았다. 택배노조가 택배기사 2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택배차의 지상 출입을 막는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179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택배차량이 지상에 진입하되 안전속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아파트 측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