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이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적폐 청산을 ‘광풍’에 빗대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1부(부장판사 이종민)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공판기일을 7일 속행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장을 비롯한 재판부가 모두 바뀐 뒤 열린 첫 공판이었다. 마지막 재판 이후 두 달 만에 재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도중 일어나 “소위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에까지 불어왔다”며 “자칫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인 관찰을 방해하는 게 사법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얼마 전 검찰 고위 간부가 모종의 혐의로 수사받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며 ‘수사 상황이 시시각각 유출되고 수사관계인에 의해 수사 결론이 계속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말한 ‘검찰 고위 간부’는 한동훈 검사장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검사장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중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고 수사심의위는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사건(사법농단 사건)은 쉬지 않고 수사 상황이 보도됐고, 그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왜곡됐다”며 “새로운 재판부가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이 사건의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사법농단 사건의 수사 과정을 한 검사장 사건에 빗대 검찰의 공소사실이 왜곡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란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100차례 넘게 재판에 출석한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서 직접 입을 연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19년 5월 29일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이 말한 공소사실은 근거가 없고 어떤 부분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오현아/남정민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