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 산하 뉴욕 외신기자센터(FPC)는 최근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문가들과 연속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월가의 진짜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미국 및 세계 경제 전망, 투자 전략 등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미국 정부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투입한 재정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4배에 달합니다. 그 영향으로 미 인플레이션은 향후 3년간 지속될 겁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장 보뱅 투자연구소장은 최근 뉴욕 외신기자센터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돈이 워낙 많이 풀렸기 때문에 장기적인 물가 상승 및 화폐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보뱅 소장은 운용자산(AUM)만 7조3000억달러가 넘는 블랙록 연구 활동을 총괄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보뱅 소장은 “금융위기 때의 재정 투입액이 비교적 적었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 쏟아붓고 있는 돈이 막대한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지난 10여년간 안전 자산이란 인식을 굳혀온 미 국채에도 의문이 생길 수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약 3년동안 전개될 인플레이션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이런 물가 오름세를 본 적이 매우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뱅 소장은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더라도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 30~40년간 그랬던 것처럼 훨씬 느긋하게 생각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금리 인상 얘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 재개가 물가 상승을 이끌겠지만 이것이 Fed 차원에선 ‘명목 인플레이션’으로 인식될 뿐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이런 점 때문에 향후 5년 정도 주식 등 위험자산에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게 보뱅 소장의 주장이다. 경기 회복세와 함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더라도 저금리 환경이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돼서다. 대신 국채 투자에 대해선 “추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보뱅 소장은 “미국 내 백신 배포가 몇 주 전보다 훨씬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기업들 실적도 예상보다 좋다”며 “그동안 미국인들의 소득이 늘고 저축액이 많이 쌓였던 만큼 경제 재개 후 소비 증대 효과가 매울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작년에 우리는 불황을 겪었던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중단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경제 복구(recovery)가 아니라 재시작(restart)이란 용어를 쓴다”고 소개했다. 재시작은 복구 표현보다 훨씬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뱅 소장은 설명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25%로 추산된다는 게 보뱅 소장의 얘기다. 금융위기의 충격 여파는 약 10년에 걸쳐 나타났지만 코로나 사태의 경우 벌써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어서다. 그는 “팬데믹 이후 재시작 첫 해인 올해 강력한 성장이 예고되고 있는데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뱅 소장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투자 전략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의 패러다임이 180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엔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투자가 수익성을 일정부분 포기한다는 의미를 담았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오히려 수익의 원동력이 되고 강력한 투자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뱅 소장은 “거시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향후 20년간 기후변화 관련 부문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나다 출신인 보뱅 소장은 미 프린스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컬럼비아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2014년 블랙록에 합류하기 전 캐나다 중앙은행(BOC) 부총재를 역임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