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양제(一國兩制) 통일중국(統一中國)’
지난 3일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중국 샤먼 하이웨 호텔 인근 해안도로에 설치된 커다란 간판입니다. 대만을 인정하지 않고 ‘통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이 반영된 구호입니다.
이 간판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 떨어진 이 섬에는 “삼민주의로 중국을 통일하자”는 대만의 구호가 적힌 간판이 서있습니다. 바로 진먼(金門)섬입니다. 정작 중화민국(대만) 본토에서는 200㎞ 떨어져있는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중화인민공화국(중국)령 섬까지 최단거리는 1.8㎞에 불과합니다. 중국 턱 밑에 있지만 대만 영토인 것입니다. 대만해협 양쪽 해안을 두고 대립한다고 해서 ‘양안(兩岸)’으로 불리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최전선인 셈입니다.
진먼 포격전과 연평도 포격전
1958년 8월 23일 오후 6시. 중국 인민해방군은 2600여발의 포탄을 진먼섬에 쏟아 부으며 포격전이 시작됩니다. 이 날 하루 양측이 소진한 포탄만 5만7000여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포격전은 10월까지 계속됩니다. 확전을 우려한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고 나서야 중국이 ‘포격을 일주일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대적인 공격이 중단됐을 뿐 국지적인 포격은 1979년 미·중 수교 때까지 계속됩니다.
본토 코앞에 있는 ‘눈엣가시’ 같은 상대의 섬에 무차별적인 포격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진먼 포격전은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2010년 연평도 포격전과도 매우 유사합니다. 진먼섬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 정부를 대만섬으로 몰아냈지만 대만섬의 부속 도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내 점령하지 못한 섬입니다.
진먼섬의 위치는 6·25전쟁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해·공군력으로 인해 북한이 황해도 강령반도에서 불과 12㎞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점령하지 못한 연평도와 비슷합니다. 말하자면 ‘대만의 연평도’인 셈입니다.
美·中 갈등 한복판으로 들어간 대만
한·중 외교장관회담은 이런 진먼섬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약 10㎞ 떨어진 곳에서 개최됐습니다. 자연스레 중국이 의도적으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이곳으로 초청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국에 “대만은 없고 오로지 중국만 있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상기시키려 했다는 분석입니다. 회담 전 이같은 분석들이 쏟아지자 당시 외교부 당국자는 “샤먼은 (과거와 달리) 현재 양안 간 교류와 경제협력의 중심도시”라며 다른 의미가 없다고 부인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됩니다.
중국이 대만을 의식해 샤먼으로 회담 장소를 정했다는 분석은 회담 2주 전인 지난달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폭탄 발언’ 때문에 더 힘이 실렸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회담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중국은 강압과 폭력성을 이용해 홍콩의 경제를 체계적으로 침식시키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의 인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중국에 직격탄을 날립니다. 미국도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언급조차 금기시해온 대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것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첫 고위직 순방 국가로 한·일을 선택한 이유가 대중(對中) 견제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던 때였습니다.
미·중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은 이제 ‘하나의 중국’ 원칙 자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리들이 대만과의 접촉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한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대만과 단교했습니다. 당시 국내법을 제정해 대만 문제에 관여할 길은 열어뒀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정부 관리들이 대만 측과 접촉하는 것을 사실상 막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조를 뒤엎고 대만 측 관리들과의 교류를 장려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블링컨 장관은 11일(현지시간)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대만을 향한 중국 정부의 점점 더 공격적인 행동”이라며 “우리는 대만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진지한 약속을 하고 있으며그러한 약속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주팔라우 미국대사가 1979년 단교 이후 미 정부 고위 관리로서는 처음으로 대만을 전격 방문하기까지 했습니다.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3~9일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한 중국 군용기가 44대에 달합니다. 대만도 이에 자국 군용기를 대응 출격시키며 대만해협의 긴장감도 유례없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2일 대만 화롄에서 최악의 열차 탈선 사고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숨진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 및 부상자 동포들을 진심으로 위문했다”는 중국 관영 매체의 위로 메시지가 나온 날에도 중국 군용기는 대만 ADIZ를 침범했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지’ 묻는 질의에 “대만 해협에서 중국 인민해방군(PRC)의 군사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가운데 중국이 2027년을 ‘대만 통일’의 데드라인으로 정해두고 있다는 관측까지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인민해방군이라는 명칭도 아직 전체 인민들의 해방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현재 대만의 수교국은 15개국에 불과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무력 ‘통일’을 시도할 경우 미국이 가만히 눈 감고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습니다. 포격전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대만의 연평도’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