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남해버블' 닮은 LH 사태 처리

입력 2021-04-05 17:46
수정 2021-04-06 00:10
18세기 초 영국 정부의 재정은 형편없었다. 1702년 시작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와 함께 스페인, 프랑스를 상대로 13년이나 싸웠다. 이 전쟁은 국채가 자금 조달에 사용된 최초의 전쟁으로 간주된다. 전쟁 직후 민간이 보유한 국채의 규모를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나타내면, GDP 추정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프랑스는 167%, 영국은 52%까지로 평가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리 높은 비율이 아닐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국가에 실존적 위협이 될 정도였다. 특히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국채를 제대로 갚지 않으면 추후 전쟁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것이어서 국채 관리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이때 영국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남해(South Sea)회사’다. 남해회사는 주식을 발행해 민간 채권자가 보유한 국채와 맞바꾸는 안을 의회에 제시했다. 남해회사가 그렇게 회수한 국채를 정부에 넘기는 대신 원금과 5% 이자를 더한 금액을 정부로부터 받아 이자 부분을 배당금으로 주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시 영국 정부가 갚아야 할 국채의 이자율이 7∼9%였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문제는 채권자들이 이 조건을 수용할 것인가였다. 채권자들이 거래에 응한 첫째 이유는, 국채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데다 정부 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당시 국채 가치가 액면의 55% 정도로만 시장에서 평가됐다는 데 있다. 주식은 거래가 활발하고 최소한 원금이 정부로부터 남해회사에 납입될 계획이었다.

더 중요한 둘째 이유는 남해회사 관계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버블로 인해 남해회사 주가가 엄청나게 뛴 사실에 있었다. 남해회사는 과장된 소문을 퍼뜨리고 투자자에게 대규모로 신용 대출을 해줘가며 주가를 부양했다. 심지어 경쟁자가 될 다른 회사의 설립을 어렵게 만드는 법안 통과에도 일조했다. 1720년 초 126파운드였던 주가는 7월 중순 1100파운드까지 올랐다. 그 결과 영국 정부는 국채의 약 80%를 성공적으로 회수했다. 하지만 남해회사 주가는 바로 그해 말 126파운드로 가라앉았다. 금융 역사에서 유명한 ‘남해 버블’ 사건이다.

주가 폭락에 민심이 흉흉해졌다. 혁명이 터져도 놀랍지 않을 분위기라는 언급이 나올 정도였다. 의회가 나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고, 귀족·의원·고위 공직자 다수가 책임자로 지목됐다. 다양한 경로로 남해회사 주식을 받고 주가 부양에 가담한 사람들이다. 10명이 공직에서 해임되거나 하원에서 쫓겨났다. 투옥된 인사들도 있었다. 모든 남해회사 책임자가 개인 재산 목록을 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정부 인사들에 대한 부패 조사 및 기소도 진행됐다. 모든 책임자의 자산을 전부 몰수하는 법안까지 통과됐다.

여러 면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남해 버블과 닮았다. 대중적 분노가 터진 핵심이 관계자들의 부정부패인 점이 그렇고, 심지어 그 처리 과정이 개인의 탐욕과 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공직자 재산 등록에, 관계자 자산 몰수까지 논의되는 것이 데자뷔로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남해 버블의 근본적인 원인이 관리 불가능한 수준의 정부 부채이지 책임자들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었던 것처럼, LH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도 일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아니다. 대규모 지역 개발을 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이 LH에 있다는 사실, 이번 정부의 속성상 대규모 주택 공급은 어려울 거라는 출범 때부터의 광범위한 예상, 이로 인해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개발 정보가 더 귀해진 점이 모든 문제의 배경에 깔려 있다.

LH 관계자들의 비리를 밝히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공직자가 부동산 투자를 못하게 하겠다는 발상은 본질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18세기 초 영국 정부가 부채 감축에 성공하고 남해회사의 일부 책임자를 대중적 분노에 제물로 바치면서 안전하게 뒤로 빠졌던 것처럼, LH 사태의 처리 과정에서 정부나 여당은 대중 달래기에만 몰두해 있는 듯하다. 18세기 영국 신민은 그 정도 제물에 달래졌다. 우리가 그 전철을 밟을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