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등 다방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미·중 양국이 각각 한국에 청구서를 내밀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3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과 한·미·일 3국 안보실장회의에서다. 중국은 지난달 한·미가 개최한 것과 같은 형식의 ‘한·중 외교·안보(2+2) 대화’ 재개를 요구했고, 미국은 반중(反中) 전선 성격의 쿼드(4개국 안보협의체)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지향해온 한국을 향한 양국의 압박이 노골화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중 2+2대화, 차관급 격상 논의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중국 샤먼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취재진과 만나 “외교·안보 고위급 2+2 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중 2+2 대화는 2013년 양국 정상 간 합의로 신설됐지만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이후 2015년 2차 회의를 끝으로 중단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국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당초 국장급이던 회담의 격도 높이기로 했다.
2+2 대화 재개는 중국이 미국 견제 차원에서 한국에 먼저 요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앞서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끝난 뒤 “한국과 2+2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당시 한국 측 발표에는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중 2+2 대화 재개는 오래전부터 논의돼온 이슈”라며 한·미 2+2 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불과 2주 전인 지난달 18일 한·미 양국이 장관급의 2+2 회담을 5년 만에 재개해 중국의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중 양국은 한국의 쿼드 참여를 놓고서도 팽팽히 맞섰다. 왕 장관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다자주의를 함께 수호하며 공동의 이익을 심화 확대하기를 바란다”며 미국 동맹국 간 비공식 협의체인 쿼드를 겨냥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대중(對中) 단일대오에 맞서 ‘다자주의’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1일(현지시간)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논의가 이미 진행돼왔다는 점을 시사했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질문에 “쿼드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고 지원하는 것에 관심 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을 묶으려는 시도”라며 “한국 친구들과 매우 긴밀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쿼드 참여에 대한 미국의 공식 요청이 없었다고 주장해온 한국 정부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북핵 문제 놓고는 美와 ‘동상이몽’한국 정부가 강조해온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상당한 시각차를 노출했다. 백악관은 2일(현지시간) 한·미·일 안보실장회의 직후 성명을 통해 “안보실장들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며 “3자협력을 통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며, (핵)확산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3국 안보실장이 동의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판하며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한 유엔 대북제재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비해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은 회의 종료 후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한·미·일은 북핵 문제의 시급성과 외교적 해결 필요성에 공감했다”며 “북·미 협상 조기 재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서 실장의 이 같은 발언은 백악관 성명엔 없는 내용이다. 반면 서 실장은 백악관 성명에 들어간 ‘북한 핵·탄도미사일 우려’나 ‘유엔 결의 이행’을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이 공개적으로 강조한 부분이 서로 다른 것이다.
미국 측은 안보실장 회의에서 이달 중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도 한·일 양국에 브리핑했다.
송영찬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