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이직 막고, 학생수 조작…역량평가 목매는 대학들

입력 2021-04-04 17:56
수정 2021-04-05 00:22
한 지방 사립대에서 비전임 교수로 재직 중인 A씨는 최근 학교 측 요구로 이직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교육부가 진행하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앞두고 A씨가 다른 대학으로 옮기면 ‘교원 충원율’이 하락해 학교가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사직서를 제출할 수도 있었지만 학계에서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결국 이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 국공립대와 사립대들이 오는 5월부터 시작하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앞두고 교육부 제시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입생 및 교원 충원 여부, 강좌 편성 규모 등으로 대학을 평가하는데, 결과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원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대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인구 유출로 정원 미달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갈수록 교육부 요구 기준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대학 돈줄 쥔 ‘역량평가’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도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의 최저 기준은 △교육비 환원율 127% △전임교원 확보율 68% △신입생 충원율 97% △재학생 충원율 86% △졸업생 취업률 56% 등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지표를 평가에 활용한다. 이 중 3개 지표에서 최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정지원제한Ⅰ’ 유형으로 분류된다. 4개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정지원제한Ⅱ’ 유형에 속하게 된다.

대학이 재정지원제한Ⅰ 유형에 속하면 신규 국책연구나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도 일부 제한된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재정지원제한Ⅱ 유형은 신규 사업 참여 제한은 물론 해당 대학이 기존에 진행하던 재정지원사업마저 지원이 중단된다.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도 끊긴다. 교육부는 최근 사전평가를 거쳐 재정지원제한 대상 18개 대학에 지정 여부를 개별 통보했다.

사전평가를 통과했더라도 여전히 넘어야 할 문턱은 남아 있다. 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 재정지원 미선정 대학으로 분류되면 산학협력 등 특수 목적 지원을 제외하고 일반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다. 올해 대학에 투입하는 일반재정지원(대학혁신지원사업) 규모는 695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기본역량진단평가를 거쳐 부실대학을 줄이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만큼 대학마다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폐교 등에 대비한 전문기관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들, 지표 맞추기 ‘고육지책’지방대학들은 관련 평가지표를 맞추기 위해 각종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다. 이번 평가에는 학생 충원율 관련 배점이 종전 10점에서 20점으로 두 배로 높아지면서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들이 더욱 긴장하고 있다. 지방대는 2021학년도 정시 추가모집 인원 2만6000여 명 중 90.3%가 쏠릴 만큼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임교원 확보율 역시 종전 10점에서 15점으로 배점이 늘었다.

지방대학들은 “갈수록 교육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기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경북지역 A사립대 관계자는 “신입생 충원율 지표는 등록금 지원 등 출혈 경쟁을 해서 어떻게든 맞출 수 있지만, 재학생들이 편입하거나 자퇴하고 다른 학교로 가는 건 막을 수 없다”며 “결국은 정원을 줄여야만 하는데 이는 대학 규모 자체를 줄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B사립대 관계자는 “학생 정원을 줄이면 등록금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전임교수를 더 확보하기는커녕 내쫓아야 할 판”이라며 “교수들의 평균 임금을 깎아 신임 교수를 더 채용하려고 했지만 기존 교수들의 반발이 커 무산됐다”고 했다. 이어 “일부 대학에서는 정년퇴임한 교수를 급히 불러와 자리에 앉히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지방 대학가에서는 “대학들이 교육부 평가를 앞두고 신입생 충원율 등의 지표를 맞추기 위해 공시자료를 조작한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미 졸업한 총동창회 회원을 신입생으로 등록시킨 뒤 자퇴 처리하거나, 대학과 무관한 학교법인의 학생을 대학생 수에 끼워넣어 부풀리기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마다 신입생 충원율을 놓고 허위공시할 우려가 있어 올해는 1학년 중도 탈락률만 따로 집계하는 등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며 “사후 적발되면 최대 다섯 배의 벌점을 주는 등 벌칙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