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중국인은 중국산 백신 맞는다?…中 "韓, 춘먀오 행동 지지"

입력 2021-04-04 16:50
수정 2021-04-30 00:02

중국 외교부가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중국의 해외 동포 백신 접종 계획을 지지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정 장관의 ‘한한령(한류 금지령)’ 해제 요구에는 사실상 거절했다. 중국이 한국 측의 요구는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골라 발표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3일 홈페이지에 한·중 외교장관회담 관련 발표문을 공개하고 “양국은 건강코드 상호 인증을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백신 협력을 전개하며 신속통로(패스트트랙)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 발표에는 물론 회담이 끝난 뒤 정 장관의 브리핑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중국 측 발표에는 한국이 ‘춘먀오(春苗) 행동’을 지지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춘먀오 행동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다는 계획이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지난달 7일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 기간 중 기자회견에서 “재외 교민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위한 춘묘 행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해외 현지에서 중국산 백신을 맞고 있다”며 “여건이 되는 국가에는 중국산 백신 접종센터를 설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이 이러한 행동을 지지했다는 것은 재한(在韓) 중국인 접종을 위해 중국산 백신이 국내에 도입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외교부는 “중국 측이 발표한 건강코드 상호 인증 체제 구축과 소위 '춘묘행동' 등을 포함한 백신 관련 협력은 우리 방역당국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양국은 코로나19 확산 상황 속에서도 인적교류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러한 차원에서 방역 협력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백신 협력과 관련된 내용이 한국 측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중국과 방역 협력을 하기로 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방역당국 협의 없이 결정할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한국이 중국의 CPTPP 가입 제안을 환영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CPTPP는 당초 미국이 주도해 중국을 배제한 다자(多者)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탈퇴한 뒤 11개국 구성돼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CPTPP에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CPTPP 가입국도 아닌 한국이 중국의 가입을 환영한다고 밝힌 것이다. 단 한·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와 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발효를 위해 양국이 노력한다는 점은 한국 측 발표에도 포함됐다.

중국은 한국이 민감할만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과는 달리 한국 측 요구는 거절했다. 정 장관은 3일 중국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게임, 영화, 방송 등 문화콘텐츠 분야의 협력 활성화를 위해 중국이 협조해달라며 한한령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왕 장관은 “한국의 관심사를 잘 알고 있다”며 “지속해서 소통하자”고 답해 사실상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왕 장관은 앞서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해제 요구에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한 바 있다. 지난해 입장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한국 외교부는 “양측은 시 주석의 방한이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 여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소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는 시 주석 방한 관련 내용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코로나19 여건이 개선되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조기 방한을 추진한다는 것은 우리가 중국 측과 협의할 때마다 확인, 또 확인하는 공감대”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