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외국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의 가격 차가 10% 이상 벌어지자 전문가들은 ‘2018년과 같은 악성 버블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비트코인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투기의 징후라는 지적이다. ○점점 벌어지는 국내외 비트코인 가격 차
2일 오후 3시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서 거래된 비트코인 가격은 7400만원을 넘어섰다. 미국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서 거래된 비트코인(6700여만원)보다 10.5% 높았다. 하루 전 같은 시간 두 거래소 간 가격 차이는 7.9%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커져 4시간50분 만에 9.1%까지 벌어졌다. 이날 새벽 1시께는 10%마저 넘겼다. 한국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 가격이 더 비싼 ‘김치 프리미엄’ 현상은 비트코인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알트코인의 한 종류인 스트라티스의 ‘김치 프리미엄’은 160%에 달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김치 프리미엄’이 5%를 넘기면 투기 징후로 분석한다. 2019년부터 코인베이스를 비롯한 해외 암호화폐거래소에서는 4~5%의 수수료를 부담하고 신용카드로 암호화폐를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외 암호화폐 가격 차이가 5%를 넘어갔을 때 해외에서 구매한 암호화폐를 국내에서 팔면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차익 거래의 영향으로 ‘김치 프리미엄’은 보통 5% 정도를 정상으로 본다. ‘김치 프리미엄’이 10%를 웃도는 것은 차익 거래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한국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들이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내외 가격 차는 한국의 엄격한 외환거래법도 영향을 준다. 일부 투자자는 해외에 있는 은행이나 거래소 계좌로 송금해 암호화폐를 싼 가격에 산 뒤 한국에서 되파는 차익 거래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송금액이 10억원을 넘기면 외환거래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국내 암호화폐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석문 코빗 이사는 “해외에서는 10% 오르는 데 그칠 일이 외국에서 쉽게 암호화폐를 들여올 수 없는 한국에선 공급 부족 탓에 20% 이상 올라가는 일이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김치 프리미엄’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8년보다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투기의 초입에 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7년 10월 말께 10%를 넘긴 가격 차는 3개월 뒤인 2018년 초 60%까지 치솟았다가 불과 한 달 만에 0%까지 폭락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해외 자금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김치 프리미엄’은 정상적인 수준이 아니다”며 “프리미엄은 언젠가 해소될 것이기 때문에 하락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국회 업무보고에서 “비트코인은 태생적으로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이라 높은 가격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관투자가 유입, 실제로는 감소가격 상승세를 주도해온 기관투자가의 유입이 최근 줄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16일 JP모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관투자가들의 비트코인 매입 개수는 17만2684개로 지난해 4분기(30만6658개)에 비해 43.6% 감소했다. 전 세계 개인투자자의 매수세도 둔화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인 비트코인은 지난해 3분기 21만4591개, 4분기 20만5444개, 올 1분기 18만7426개로 매 분기 감소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김치 프리미엄’이 형성되더라도 개의치 않는 국내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며 “비트코인의 실제 가치가 없다는 것을 투자자들도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버블은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해외에서는 장기적으로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온다. 글로벌 금융기관이 암호화폐를 ‘투자상품’으로 인정하는 추세여서다. 지난달 31일 비자는 암호화폐인 USD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도입한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전문방송인 CNBC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이날 개인자산관리 고객에게 비트코인 관련 상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존 월드론 골드만삭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비트코인 투자를 원하는 고객 수요가 증가해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