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몫 양보 못한다"…'백신 이기주의'에 분열된 EU

입력 2021-04-02 17:01
수정 2021-05-03 00:03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코로나19 백신 배분 문제로 분열되고 있다. EU 회원국 가운데 백신이 부족한 불가리아 등 5개국에 더 많은 물량을 주는 데 대다수 국가가 동의했지만 오스트리아 등 3개국은 자기 몫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했다. EU는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 오는 7월까지 집단면역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역내에서 생산된 백신에 대해 사실상 수출제한 조치까지 내렸다. 최근에는 영국과 백신 공급을 두고 신경전도 벌이고 있다. EU 회원국, 백신 공급 갈등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은 2분기 공급할 예정인 화이자 백신 1000만 회분의 배분 방식을 이날 결정했다. EU는 일반적으로 회원국 인구에 비례해 백신을 나눠 갖지만 이번에는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등 백신이 부족한 5개국에 더 많은 물량을 배분하는 데 19개 회원국이 합의했다. 불가리아 등 5개국은 인구 비례 배분량에 더해 285만 회분을 추가로 가져가게 된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성명을 통해 “우리가 74만7000회분을 추가로 받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도 자국이 6만2000회분을 더 받는다며 EU의 협력에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백신 배분을 놓고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베니아 등 3개국은 자국 배분량을 줄일 수 없다며 합의를 거절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체코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 백신이 더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체코와 연대하며, 나머지 회원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일부 회원국이 공평한 몫보다 백신을 더 받고 있다”며 “역내 백신 배분 방식을 수정해달라”고 EU 집행위원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태도를 두고 한 유럽 외교관은 AFP통신에 “쿠르츠 총리가 부족한 연대 의식을 드러내며 5개국을 버렸다”며 “그는 동맹국을 등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EU와 영국 간 백신 신경전EU 회원국들은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7월까지 역내 성인 인구 70% 이상에게 접종해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백신 수급을 둘러싼 영국과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EU는 영국이 자국에서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면서 네덜란드 공장 등 역내에서 생산된 AZ 백신을 영국에 수출하지 않고 있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이 AZ 계약분을 다 확보하기 전에는 영국에 단 1회분도 건넬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영국은 백신 수출을 막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 AZ 공장은 영국의 대규모 투자 덕에 운영되고 있다며 EU가 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AZ 백신을 두고 양측의 싸움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AZ 백신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AZ 백신 사용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미국 보건당국이 AZ 백신 사용을 승인한다 해도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미국은 다른 여러 백신 제조사와 충분한 공급계약을 맺어 AZ 백신 없이도 모든 인구에게 접종할 만큼 물량을 확보했다”며 “올가을에 추가 접종을 하기에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