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MS가 IBM에 저작권료 없이 OS 쓰게 한 까닭은

입력 2021-04-05 09:00

플랫폼 시대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시장가치를 기록한 기업과 조달러 수준의 가치를 돌파한 최초의 기업은 모두 플랫폼 기업이었다. 2018년 말 기준 시장가치 최상위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아마존, 구글(알파벳)이었다. 페이스북과 알리바바, 텐센트까지 합치면 시장가치는 5조달러에 가깝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등장한 유니콘 기업 가운데 60~70%가 플랫폼 기업이다. 소수의 기업이 플랫폼으로 세계 경제는 물론 개개인의 작업과 생활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플랫폼 전략의 출발플랫폼 비즈니스가 디지털화로 가속화했지만 오늘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쇼핑 카탈로그와 같은 19세기의 광고업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과거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이다. 빌 게이츠는 IBM에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도 도스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해줬다. 대신 다른 제조업체에 사용 라이선스를 줄 수 있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뿐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IBM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인 듯 보였지만, 게이츠는 새롭게 형성되는 클론 산업에 주목했다. 클론 산업은 IBM PC와 동일한 성능을 갖지만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분야를 의미했다. 클론들은 IBM 호환 기기의 소프트웨어와 주변장치 분야에서 작지만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게이츠는 IBM PC가 대중화하면 이 분야가 새로운 대규모 산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에 운영체제(OS) 라이선스를 줄 수 있는 권한만 독점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PC산업 전체의 중심부에 자리잡을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오늘날 수천 곳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가 수백만 개의 응용소프트웨어와 프린터, 카메라, 컨트롤러 등 다양한 세부 장치들을 만들고 있다. 게이츠는 도스를 IBM에 팔아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IBM PC를 이용해 도스를 업계 전반에 확산시킴으로써, 많은 기업이 IBM PC와 호환 가능한 응용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반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하지만 1980년대 애플의 전략은 달랐다.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응용소프트웨어 시장을 넓게 구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1982년 도스와 호환 불가능한 매킨토시용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개발자에게 수백달러의 비용을 청구했다. 애플 PC는 가격 또한 매우 높았다.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춘 훌륭한 제품에 걸맞은 비용을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비싼 개발비용으로 다양한 응용소프트웨어가 개발되지 못했고, IBM 호환 PC의 두 배에 달하는 하드웨어 가격 탓에 유의미한 시장점유율을 경험하지 못했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승부는 제품의 질이나 사양이 아니다. 부상하는 시장 내의 다수 부문을 한데 모아 긍정적인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운영체제의 라이선스를 싼값에 광범위하게 공급하면 하드웨어 생산비용이 낮아진다. 낮아진 하드웨어 비용으로 PC 사용자가 늘어나면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응용소프트웨어를 설계할 개발자들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형성된다. 오늘날의 플랫폼 전략도 이와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은 초창기에 친구와 그들의 친구들, 또 그 친구들의 친구들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들의 플랫폼 전략은 외부 기업과 독립 프로그래머가 게임을 비롯해 다른 여러 앱을 설계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면서 완성됐다. 수백만 개로 늘어난 앱은 페이스북의 매력도를 한층 더 높이는 데 기여했다. 긍정적 피드백 루프가 더 크고 빨라진 것이다. 종합 이해가 필요한 플랫폼 경제 한편에서는 디지털 경쟁 시대에는 이전의 비즈니스 규칙은 더 이상 소용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디지털화로 플랫폼 경제가 확산했지만, 성공한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플랫폼 기업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기업의 장기적인 성공은 경쟁 업체보다 높은 실적을 올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디지털이라는 화려한 수식에 홀려 유의미한 재무실적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다는 상식은 잊혀지기 쉽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은 단편적인 이해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기업과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비즈니스와 그 환경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경제주체는 전통 경제와 디지털 경제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경영자와 근로자, 정책결정자가 디지털 경쟁, 혁신 그리고 권력의 미세한 지점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두 세계 모두에서 적용 가능한 전략을 이해하고 환경 변화에 맞춰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 플랫폼을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