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재조사 결정에…생존 장병 "靑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

입력 2021-04-01 16:06
수정 2021-04-01 16:08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건의 원인에 대해 재조사 결정을 내린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끊임없이 천안함 좌초설을 제시해온 신상철씨의 진정에 따른 것이다. 유족과 생존장병들 사이에서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분통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재조사를 강행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신씨로부터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취지의 진정이 접수돼 사전 조사를 거쳐 같은해 12월 조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신 씨는 2010년 사건 발생 직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전신) 추천 몫으로 민·군 합동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하며 천안함이 좌초됐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온 인물이다. 인터넷 매체 ‘서프라이즈’ 대표였던 신 시는 2016년 2월 1심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위원회는 신 씨가 ‘사망 사건 목격자로부터 전해 들은 사람’이라는 진정인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 진정이 접수되면 각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조사 개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위원회 측 설명이다.

정부의 재조사 결정 방침이 알려지며 생존장병들과 전사자 유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장은 1일 자신의 SNS에 “나라가 미쳐 46명 사망 원인을 다시 밝힌단다”며 “몸에 휘발유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예비역 대령)도 “대통령 직속 기관이 음모론자의 진정을 받아들여 진상조사를 결정했다는데 위원회를 방문해 대통령이 말한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에 반대되는 결정을 한 이유를 듣고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기관의 재조사 방침이 불과 엿새 전 문재인 대통령 발언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사건 경과는 너무도 생생하게 잘 기억하고 있다”며 “서해를 수호한 천안함 전사자, 그리고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보훈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는 “누구 소행인지 말해달라”는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씨의 질문에 북한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은 채 “정부의 입장은 변함없다”고 대답한 바 있다.

유족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위원회는 오는 2일 긴급 회의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일 “천안함 유가족들과 위원장이 면담했고, 위원장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했다”며 긴급회의 소집 이유를 설명했다. 이인람 위원장은 이날 유족 등의 항의방문 뒤 “사안의 성격상 최대한 신속하게 각하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결정할 예정”이라 말해 각하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재조사 방침을 결정한 위원회가 이제서야 각하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회의 재조사 결정은 지난달 31일 모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서야 처음 공개됐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자 이제서야 위원회가 유족 반대를 내세운다는 지적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