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산업은 오랫동안 ‘안방 효과’를 누려왔다. 2006년 월마트의 한국 시장 철수가 절정이었다. 그 해 이마트는 월마트의 한국 매장 16개를 8250억원에 인수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홈쇼핑 등 한국의 대형 유통기업은 외부 경쟁자 없이 오랜 기간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쿠팡이 유통 전선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시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롯데, CJ 등 국내 간판 소비재 기업이 항로를 설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정보기술(IT) 패러다임의 변화를 놓쳤기 때문이다. 롯데그룹만 해도 1996년 롯데인터넷백화점이란 이름으로 e커머스(전자상거래) 분야에 가장 먼저 진출했음에도, 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은 쿠팡 등 신규 후발주자에 속절없이 밀려나며 최근에는 수장까지 교체했다.
‘콘텐츠 왕국’을 건설한 CJ그룹도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재계 관계자는 “CJ는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홈쇼핑을 CJENM에 합병시킴으로써 콘텐츠와 결합한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려고 했다”며 “쿠팡 등 e커머스로 빠르게 소비 채널이 이동하면서 이 같은 전략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생산, 물류, IT, 마케팅 등 전 분야에 걸쳐 투자를 진행하지 않고선 빅테크의 유통시장 공략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