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건강검진 때마다 받아야 했던 대변 검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가 대장암 국가 암검진 1차 검사를 대변 검사에서 내시경 검사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해서다. 지금은 대변 검사에서 이상이 있는 사람만 내시경 검사를 받지만 정부 검토안이 확정되면 모든 수검자가 처음부터 내시경 검사를 받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31일 국가암관리위원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 ‘암 관리 종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암 관리법에 따라 5년마다 세우는 중장기 계획으로 2025년까지 시행할 계획을 담았다.
이날 발표한 종합계획에는 ‘예방 가능한 암’ 환자를 줄이기 위해 국가 암 검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위험 요인 등을 없애면 환자 수가 줄어드는 암을 예방 가능한 암으로 분류한다. 복지부는 이렇게 예방 가능한 암으로 위암, 대장암, 간암, 자궁경부암 등을 정했다.
대장암이 있으면 출혈이 생겨 대변 속에 피가 섞일 가능성이 높다. 만 50세 이상 성인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 대변을 받아 제출한다. 대변에서 혈액 성분이 나오면 의사가 암이 생겼는지 확인하는 2차 내시경 검사를 한다.
하지만 채변 과정이 불편한 데다 대변에 혈액 성분이 있다고 모두 암 환자는 아니다. 정확도가 낮다는 게 한계로 꼽힌다. 의료계에서 내시경 검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유다. 복지부는 국내 2만6000명의 검진 데이터를 토대로 2025년까지 대장 내시경 검사 안전성과 비용 효과성 등을 평가하기로 했다. 여기서 내시경 검사로 바꾸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리면 대변 검사는 사라지게 된다.
복지부는 위암 원인으로 꼽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검사를 국가 암 검진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남성 위암 환자의 34.5%, 여성은 33.2%가 이 세균 때문에 위암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검사를 해 세균을 없애는 치료를 하면 위암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C형 간염 검사를 국가 암 검진 사업에 포함하고 암 검사 정확도가 떨어지는 위장조영 검사, 필름유방촬영기기 등은 없애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으로 불리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HPV 백신은 2016년부터 필수 예방 접종에 포함돼 만 12세 여자 청소년은 무료로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접종비용을 본인이 내야 한다. 비용은 60만원 안팎이다.
자궁경부암 환자의 70% 정도가 HPV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된다. 주로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고 감염된 뒤에는 예방 효과가 없기 때문에 성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백신을 맞는 것이 좋다.
의료계에서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을 남자 청소년으로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이 HPV에 감염되면 생식기 사마귀, 음경암, 항문암 등이 생길 수 있는 데다 성관계 등을 통해 여성에게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경복 이화여대 약학대 교수팀이 대한부인종양학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만 12세 남녀 모두에게 HPV 백신을 접종했을 때 HPV 관련 암 환자 수는 남녀 모두에게서 30%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제 기준을 고려해 HPV 예방 접종 대상 확대를 검토할 것”이라며 “세계보건기구는 9~13세 여성, 미국은 11~12세 남녀를 접종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런 건강검진 개편 방안 등을 통해 국내 75세 미만 신규 암 환자를 5만6000명에서 2025년 4만5000명으로 20% 이상 줄이는 게 목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