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3일 오후 5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업계, 휴대폰 제조사는 서울 시내에서 긴급 회의를 열었다. 미국이 당초 11일로 예정했던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상용화 시기를 3일로 앞당길 수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5일 개통 행사를 하려던 통신업계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뺏길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오후 8시. 통신 3사는 개통식 준비에 들어갔다. 사전예약 가입자 가운데 1호 개통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나섰다. 5G 가입자를 등록할 전산시스템도 다급하게 가동했다. 삼성전자는 통신 3사에 보낼 5G 스마트폰을 수배했다.
오후 11시. 준비가 끝났다.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와 아이돌그룹 엑소 백현·카이, e스포츠 선수 페이커가 최초의 5G 가입자가 됐다. 유영민 당시 과기정통부 장관(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통해 한국이 명실상부 정보통신 최강국임을 입증했다”고 선언했다.
오후 11시55분. 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은 트위터를 통해 시카고와 미니애폴리스 고객들에게 5G 통신망이 개통됐다는 소식을 뒤늦게 속보로 전했다. 평균 전송 속도 세계 1위
한국이 유례가 드문 ‘민관 합동 첩보전’을 가동해 ‘세계 최초 5G 통신망 상용화’ 타이틀을 따낸 뒤 2년이 흘렀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고속도로’로 손꼽히는 5G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5G 네트워크의 핵심은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성이다. 이론적으로 5G는 LTE보다 데이터를 최대 20배 빠르게 전달한다. 연결 가능한 장치도 10배에 달한다. 시장 확대 속도를 보면 5G 상용화는 궤도에 오른 모습이다. 국내 5G 가입자는 지난 1월 말 기준 1286만 명을 기록했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가 70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5명 중 1명은 5G 서비스를 쓰는 셈이다. 5G 전송속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3월 시장조사 업체 스피드체크 조사에서는 다운로드 평균 속도 429Mbps(초당 메가비트)를 기록했다. 2위 호주의 평균 속도가 142Mbps인 것과 비교하면 세 배가 넘는 속도다. “비싼데도 잘 안 터져” 불만 고조5G 상용화는 기틀은 닦았지만 소비자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당초 정부와 통신사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속도인 20Gbps(초당 기가비트)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가 작년 하반기에 측정한 통신 3사 평균 5G 다운로드 속도는 690Mbps에 그쳤다. LTE의 4배를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험실 수준의 이론상 수치를 내세워 홍보한 게 비판의 빌미를 줬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무선 기지국 설치 역시 지지부진하다. “잘 안 터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작년 말 기준 5G 기지국은 전체 무선국 중 9.59%(14만1939개)뿐이다. 특히 지하철과 실내에서 LTE로 전환되거나 데이터가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전국 주요 다중이용시설 4516곳 중 5G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2792개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을 교체하려는 소비자들은 5G 요금제 외에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비싼 5G 요금제를 사용하지만 빈번하게 끊기는 5G에 스마트폰 설정을 LTE 전용으로 하고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5G 가입자 3000여 명은 정부와 통신사가 홍보한 초고속 5G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전국망 구축이 지체됐다며 집단 손해배상을 준비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LTE와 비교하면 빠른 속도로 서비스가 안착되고 있다”며 “높아진 소비자의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기지국을 구축하고 서비스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인프라 확대하고 B2B 활로 찾아통신사와 정부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5G 인프라 확대를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신 3사는 월 3만~4만원대에 5G 무제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출시하며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서비스 개선 등을 위해 2022년까지 2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5G 전용 킬러 콘텐츠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장이 커지면서 여행지를 방문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감상하는 등 실시간 VR·AR(가상현실·증강현실) 수요가 늘었다. 클라우드 게임 등 초고속 네트워크를 활용한 서비스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5G 통신망은 산업계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통신업계는 스마트 팩토리, 자율주행, 공공안전 등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발굴하며 5G 융합산업 생태계를 확장할 계획이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