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어떻게 했길래"…친환경보일러 보조금 벌써 '바닥'

입력 2021-03-31 17:14
수정 2021-04-01 01:53
서울 신당동에 사는 이모씨(47)는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로 바꾸기 위해 정부 보조금을 신청했다가 낙담했다. “올해 예산이 모두 소진돼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구청의 답변 때문이다. 친환경 보일러 설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분 보급 지원 예산이 1분기 만에 바닥나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는 일반 보일러보다 열효율이 높고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 물질은 적다. 환경부는 수년 전부터 친환경 보일러 보급을 늘리기 위해 1등급 제품을 설치하면 소비자에게 총 20만원을 지원해왔다. 국비와 지방비 비율이 6 대 4다. 더뎠던 친환경 보일러 보급에 속도가 붙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4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등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기 위한 ‘대기관리권역법’에 따라 친환경 보일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수도권, 충남, 충북, 전북 일부 지역을 비롯해 부산, 대구, 울산, 광주 등 총 77개 지자체가 대상이다.

의무화 이후 설치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전국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아 설치된 친환경 보일러는 36만 대로, 당초 목표치였던 35만 대를 넘어섰다. 보일러업체들의 친환경 보일러 판매 비중도 의무화 전 40%대에서 지난해 80% 이상으로 확대됐다.

수요는 늘었지만 올해 정부 예산은 거꾸로 줄었다. 환경부는 2019년 360억원(국고 기준)이었던 예산을 작년 510억원까지 늘렸으나 올해는 300억원으로 41.1% 축소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9년 예산 소진율이 19.8%에 불과한 데다 작년 4월 실시한 지자체 조사에서도 수요가 높게 나오지 않았다”고 예산 감액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 오판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보고 있다. 보일러업계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은 보조금 예산을 소진했으며 인천도 소진율이 97%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에선 수원 안성 김포 화성 동두천 남양주의 예산이 바닥을 드러냈다. 한 소비자는 “친환경 보일러 설치 의무화로 보급이 늘었다고 정책 효과를 홍보하더니 정작 예산은 줄었다”며 “정책 효과와 적정 수요를 내다보지 못하는 탁상행정이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