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KBS에서는 서울시장 후보 2차 TV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이수봉 민생당 후보 간 3자 토론회가 이뤄졌습니다.
대한민국 수도에서 전임 시장의 성범죄라는 초유의 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인데도 어찌 된 일인지 토론에서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원인과 대책은 토론 주제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TV 토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하고 KBS가 중계했습니다. 사회자는 박태서 KBS 기자가 맡았는데요.
사회자의 첫 번째 공통 질문은 '서울시장 임기는 1년으로 임기가 짧은 만큼 최우선으로 추진할 정책이 무엇인가'였습니다. 이어진 두 번째 질문은 '주거 안정 대책이 무엇인지' 였습니다.
후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주도권 토론에서도 권력형 성범죄는 주제에서 빠졌습니다. 주도권 토론의 첫 주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공공기관 임직원을 포함한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높다. 서울시에 LH와 비슷한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끝나자마자 박영선 후보가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의혹을 제기하면서 후보들의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회자는 박영선 후보에게 "본인 발언을 가급적 1분 지켜달라"고만 언급했을 뿐 주제에서 벗어난 점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수봉 후보가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데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기득권 담합, 카르텔 문제"라며 "과거에는 상위 1%의 소수 특권층이 이런 짓을 했다면 지금은 LH에서 보듯 그게 더 내려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특권과 카르텔을 가진 엘리트의 범죄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후보는 이어 재난위로금 10만원 지급을 공약한 박영선 후보에게 "공무원과 LH 임직원에게도 똑같이 지급하느냐"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제는 '저출산 해법'이었습니다. 사회자는 "서울의 합계출산률이 0.64명으로 불명예스럽게도 전국 꼴찌"라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저출산 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어 '노인·청년 일자리정책', '코로나19 지원책', '육아·보육 대책' 순이었습니다.
박 후보에게는 같은 당 출신에다 친(親) 여성이라고 주장해 온 박 전 시장이 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피해호소인'이란 단어를 창조한 남인순·고민정·진선미 등 민주당 여성 의원들과 박 시장의 성범죄 논란을 '소모적 페미니즘 논쟁'이라고 주장한 윤준병 민주당 의원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른 여당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게 놔두는 이유 역시 궁금합니다.
오 후보에게는 서울시장을 지낸 인사로서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한 서울시 조직의 구조적 문제가 무엇이고, 오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재발 우려는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서울시민이라면 두 후보에게 듣고 싶고, 들어야 마땅한 것들입니다. 토론은 2시간 이뤄졌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권력형 성범죄가 토론 주제에 오르지 않은 점은 의아합니다.
앞서 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가 적힌 시민단체의 현수막을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가 이날 공개됐는데요. 선관위는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에 "임기 만료 선거와 달리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며 "일반 선거인이 선거 실시 사유를 잘 알고 있는 게 이번 보궐선거의 특수성"이라고 답했습니다. 국민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왜 치러지는지 다 알기 때문이란 게 이유입니다. 말문이 막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