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뉴욕증시에서 이뤄진 수십조원 규모의 블록딜(대량 매매) 파장이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연일 이어지고 있다. 외신에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 측이 이용한 차액결제거래(CFD: contract for difference)의 위험성을 두고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지난주 비아콤CBS, 디스커버리, 텐센트뮤직 등 주식을 30% 이상 폭락하게 만든 주범인 아케고스캐피털매니지먼트 거래의 핵심에는 두 가지 파생상품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총수익스와프(TRS)와 CFD다.
TRS는 증권사가 차입(레버리지)을 일으켜 대출해 주고 매매에 따른 수익은 투자자가 가져가는 파생상품이다. CFD 역시 TRS의 일종이다. TRS의 담보는 해당 주식이지만 CFD 담보는 증거금이다. 국내에서 CFD는 주로 개인투자자(전문투자자 한정)들이 이용하는 TRS로 통하고 있다.
이들 상품을 활용하면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가 가능하다. 보통 장외거래로 이뤄진다.
아케고스를 이끄는 빌 황 역시 다수의 월가 대형 은행과 TRS·CFD 계약을 맺어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외신에 따르면 은행들은 아케고스에 5~8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제공했다. 심지어 레버리지가 20배에 달한 거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빌 황은 100억달러를 보유했을 뿐이지만 노무라, 크레디트스위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에서 제공하는 레버리지를 통해 500억달러어치의 주식을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선 상장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하는 경우 공시가 원칙이지만 CFD 거래는 주식 보유자가 본인이 아닌 금융회사로 표시돼 지분 추적도 불가능하다.
26일 하루에만 27% 폭락한 비아콤CBS는 그가 CFD를 통해 보유했던 대표적인 주식이다. 연초 36달러였던 이 주식은 올 들어 급등해 지난 22일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2~24일 웰스파고와 UBS 등이 이 종목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하자 사흘 만에 주가가 33% 떨어졌다. 100달러였던 주가가 67달러까지 주저앉자 재앙이 시작됐다.
빌 황이 투자은행에서 제공하는 CFD 레버리지로 실제 100달러만 가지고도 500달러어치 비아콤CBS 주식을 샀다고 가정해보자. 이 주식은 빌 황 개인의 이름이 아닌 은행 소유이며 담보로 유지된다. 그러다 주가가 33% 떨어지면 그는 순식간에 투자원금보다 많은 150달러를 잃게 된다. 투자은행은 그에게 손실분인 50달러와 추가 증거금을 요구(마진콜)했다. 하지만 빌 황은 이 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은행은 결국 반대매매로 주식을 팔면서 대량 매물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이 거래를 제공한 은행 중 하나인 노무라의 경우 20억달러(약 2조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역시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1분기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발표했다.
2019년 라임자산운용 사태 원인 중 하나도 TRS에 있었다. 라임 펀드는 국내 대형 증권사들과 무리한 TRS 계약을 맺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코스닥 한계기업 전환사채(CB)를 사들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봤다.
CFD도 지난해부터 개인 ‘큰손’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연말 대주주 양도소득세 회피 수단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하지만 급락장이 펼쳐지면 ‘깡통 계좌’가 속출하면서 아케고스 사태처럼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