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빨 따라 출발선 달라진다고?”…장바구니 추첨 이관제 공정성 논란

입력 2021-04-01 16:17
수정 2021-04-01 16:18
[한경잡앤조이=이진이 기자/서지희 대학생 기자] 100m 단거리 경주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승패를 가르는 시간은 단 15초 안팎이다. 그만큼 순발력이 매우 중요한 종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수마다 출발선이 다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이번 1학기 중앙대 수강신청 현장에서도 연출됐다. 올해 처음 도입된 수강신청 장바구니 추첨 이관제 때문이다.

장바구니 추첨 이관제란
장바구니 추첨 이관제란 장바구니 인원이 강의 여석보다 많을 경우, 여석의 50%를 추첨해 미리 이관하고 나머지 50% 여석은 기존처럼 수강신청 당일 강의를 듣는 학생끼리 경쟁해 자리를 차지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장바구니 인원이 여석보다 적다면 현행대로 전원 이관된다.



예를 들어 자자(자과 자학년) 여석이 100명인 수업을 60명이 신청했다면 전원 이관되지만, 120명의 학생이 장바구니에 담았다면 추첨 이관제를 적용한다. 이때 강의 여석의 50%인 50석은 신청 인원 120명 중 무작위 추첨을 통해 뽑힌 학생에게 내어주고 나머지 50석을 두고 70명의 학생이 수강신청 당일 선착순으로 신청 경쟁을 벌이게 되는 구조다.

학사팀은 공정하고 높은 이관율로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그로 인해 수강신청 당일 서버 과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2학기 중앙대는 수강신청 당일 DDoS(여러 대의 공격자를 분산 배치해 동시에 ‘서비스 거부 공격’을 하는 해킹 방식) 공격을 받은 바 있다. 학생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곤욕을 치르자 학교 본부는 수강신청 전담 TF를 꾸려 시스템을 정비했다.

공정성 원칙에 어긋나
그러나 추첨 이관제를 둘러싼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학교 측이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해 도입한 시스템인 만큼 실제로 이번 개편된 방식으로 수강신청이 한층 수월해졌다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 여론은 싸늘했다.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만을 토로한 글들이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여러 차례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1학기 수강신청을 마친 재학생 A씨는 추첨 이관제를 두고서 “한마디로 너무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A씨는 “이렇게 중요한 수강신청을 왜 운에 맡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장바구니에 강의를 담을 때부터 심리적 불안감이 느껴져서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A씨의 경우 원래 비인기 과목을 많이 신청해 수강신청 당일 경쟁을 벌이는 과목은 인기 있는 한두 과목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개편된 방식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수강신청 당일 경쟁률이 높아져 압박감을 많이 느꼈고 그로 인한 감정적 손해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학생 B씨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B씨가 속한 학과는 유독 수강신청 경쟁이 치열한데, B씨의 경우 이관이 잘 돼 수강신청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운으로 학생 간 수강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추첨 이관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경쟁 부추긴다는 지적도
한 학생은 게시판 익명의 힘을 빌려 추첨 이관제 시스템이 갖는 모순점을 지적하며 이를 비판했다. 그는 “공정성도 문제지만, 개편된 수강신청 방식은 오히려 경쟁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50석을 두고 기존 100명이 겨뤘다면 이제는 25석을 두고 75명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첨 이관제로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는 학사 팀의 논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로 인한 강의 ‘사고팔기’ 문제도 꼬집었다. 전부터 학내 커뮤니티 안에서 문제 제기돼 왔던 강의 매매 성행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추첨 이관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본인에게 우선순위가 아닌 강의들을 손쉽게 얻기 어려웠다. 그러나 추첨을 통해 이를 우연한 기회로 잡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일부 학생들은 그 수업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다른 절실한 학생에게 되레 팔며 금전 거래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3월 초, 한 학부생은 교내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특정 학생을 지목해 그의 만행을 고발하는 글을 작성했다. 작성자는 무분별한 강의 매도의 피해자였다. 그가 지목한 학생은 이미 여러 차례 타과생을 대상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강의를 파는 상습범으로 드러났다. 학생 커뮤니티 사이에선 이처럼 암암리에 강의 암표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부당함을 들춰냈지만, 그 시각 다른 누군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생 내부에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오늘’은 3월 12일부터 16일까지 5일간 설문 조사를 다시 진행했다. 학생들의 의견과 건의사항을 학교 측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추후 설문조사 결과를 두고서 학교 측과 협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대학본부는 장바구니 추첨 이관제 도입에 앞서 지난 2학기 설문 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참여율은 약 22%로 저조한 수준을 보였다. 낮은 설문 도달률로 인해 유의미한 결과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추첨 이관제의 부정적 인식을 견인한 요인 중 하나였다.

이번 논란과 관련 백준기 교학부총장은 “논란이 굉장히 뜨겁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비용과 노력이 굉장히 많이 들었고 그전에 학생들의 사전 설문조사 의견도 상당 부분 수렴을 했다”고 입을 뗐다. 그는 이어 “여석이 남아서 모두가 수강신청을 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문제가 수강신청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많은데 그에 비해 성공하는 학생들은 한정적이어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은 이해한다”라며 “저희가 ‘추첨이 맞다’ 아니면 전과 같이 ‘선착순이 맞다’처럼 칼로 무 베듯이 정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다. 단지 선착순으로 하든 추첨을 하든 여전히 수강신청에 성공하지 못한 학생들의 불만은 어디서든지 터져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는 두 가지 방법이 공존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상태여서 시행 후 의견을 들어서 개선한다면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해결책은 없을까. 많은 이들의 바람처럼 여석 증대와 서버 대량 확충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방적으로 요구만 할 수는 없다. 학교와 학생사회가 차근차근 타협점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 이번 논란을 점화했는가다. ‘공정성’이 청년 세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이번 논란의 쟁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기회의 균등과 동등한 조건이 무시되는 사회를 청년들은 거부한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zinysoul@hankyung.com